“초기 진단·치료 놓치면 평생 가는데”…소멸 직전 ‘소아정형외과’

“초기 진단·치료 놓치면 평생 가는데”…소멸 직전 ‘소아정형외과’

소아정형외과 전문의 단 25명
‘적자만 나는 골치 아픈 진료과’ 취급
“사명감만으로 버티기 힘들어…제도 보호 장치 필요”

기사승인 2026-02-09 06:00:09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아이 뼈는 어른 뼈와 완전히 다릅니다. 치료시기를 놓치면 되돌릴 수 없어요.” 

소아를 전문으로 보는 정형외과 의사가 진료실에서 한 아이의 엑스레이(X-Ray)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단순 골절로 보였던 외상이 제때 정확히 치료되지 않아 성장판이 손상되고, 이미 다리 변형이 생기며 길이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상태였다. 이 아이는 앞으로 수년간 반복적인 치료와 경과 관찰을 감내해야 한다.

소아·청소년기의 골절과 외상, 척추·사지 변형은 초기 진단과 치료시기를 놓치면 성인이 된 이후까지 평생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뼈와 성장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소아정형외과는 소멸 위기에 처했다. 신규 전문의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데, 기존에 있던 의사마저 진료 현장을 떠난다. 더 이상 사명감만으로 버티는 구조는 어렵다며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대한소아청소년정형외과학회에 따르면 현재 학회에 등록된 정회원이 약 140명인데 이들 중 소아정형만 보는 전문의는 25명에 불과하다. 숫자 자체가 많지 않은데 이들 대부분이 수도권에 편중돼 있다. 45개 상급종합병원 중 소아정형외과 전문의가 한 명도 없는 곳도 많다.

같은 골절이라도 성인과 소아의 치료 접근법은 완전히 다르다. 진료 난이도는 높고 책임감은 무거운데, 저출산으로 환자는 계속 줄고 지원은 충분하지 않다 보니 세브란스병원 등 서울 빅5 병원마저 몇 년째 신규 의사가 구해지지 않는다. 또 위험 부담은 큰데 진료할수록 적자만 보는 수가구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환자를 진료하기 어렵다.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이다. 전문 인력이 줄어들수록 초기 진단은 늦어지고, 잘못된 치료를 받은 뒤 뒤늦게 대학병원을 찾는 사례가 늘어난다. 이 경우 이미 변형이 고착돼 치료와 재활이 훨씬 어렵게 되고, 환자와 가족의 부담도 커진다.

소아정형은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수년간 추적 관찰이 필요해 의료진의 장기적 책임이 뒤따른다. 박건보 소아청소년정형외과학회 총무이사는 “소아정형은 치료 결과를 확인하는 데만 10년 이상 걸린다”며 “예를 들어 태어나자마자 심한 선천성 기형으로 수술해도 그 수술이 정말 잘됐는지는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지켜봐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급속한 고령화는 소아정형 분야를 더욱 주변부로 밀어내고 있다. 의료기관 운영 측면에서 보면 노인 관절·척추 질환은 환자 수가 많고 병원 수익과 직결된다. 자연스럽게 병원은 고령 환자 진료에 인력과 자원을 집중하게 된다. 그 결과 소아정형외과는 병원 내에서도 “적자만 나는 골치 아픈 진료과”로 취급받기 일쑤다. 현장에서는 “지금도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몇 년 뒤면 사실상 소멸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박 교수는 “퇴직한 교수의 자리를 이어받을 젊은 의사가 들어오지 않아 아예 진료를 접거나, 소아정형외과 이름만 걸어 놓고 실제로 전문적인 진료가 이뤄지지 않는 곳도 많다”면서 “다른 진료과와 똑같이 환자 100명 안 보고 80명만 봐도 수입이 비슷한 식의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태균 건양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골절·외상 아이들을 진료하고 있지만, 젊은 의사들에게 소아정형외과를 적극 추천하기는 어렵다”고 털어놨다. 휴가 중에도 응급실 연락을 받으면 바로 대응해야 하고, 그만큼 경제적 보상이 특별하게 나은 것도 아닌데 ‘남들이 안 하는 일을 한다’는 사명감만으로는 버티기 힘들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10년 전 이 분야를 선택할 때는 우리 병원에 소아정형외과가 없었고, 교수로 남고 싶다는 목표와 함께 아이들을 좋아하는 개인적 동기가 있었지만, 지금 젊은 의사들에게 ‘이런 점이 좋다’고 선뜻 말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젊은 의사가 하루아침에 명의가 되는 것도 아니고, 소아 진료는 경험이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이런 부담을 덜어줄 보호 장치가 부족하다”며 “신규 소아정형외과 지원자가 늘어나려면 소아정형 질환에 대한 적정 수가 보장과 함께 전공의·전임의 단계에서 과도한 부담을 완화하는 제도적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