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27학년도부터 2031학년도까지 5년간 서울을 제외한 비수도권 32개 의과대학 정원이 연평균 668명씩 늘어나는 가운데 의료계의 반발이 극심하다. 정부는 이번 증원 결정을 지역·필수·공공(지·필·공)의료 개혁을 위한 중요한 출발이라고 평가한 반면, 의료계는 지난 정권의 잘못을 답습한 비과학적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의대 교수들은 이미 정상적인 의학교육이 불가능하다며 정부를 향한 공개질의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7차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개최하고 2027학년도부터 5년간 의대 증원 규모를 3342명으로 결정했다.
의대 정원은 2024년 정원 3058명에서 2027년에 490명 증원된 3548명, 2028년과 2029년에는 613명 증원된 3671명 규모로 정해질 계획이다. 2030년부터 공공의대와 지역의대가 설립돼 각 100명씩 신입생을 모집하게 되면 2030년 이후 의대 정원 규모는 3871명으로 늘어난다. 이를 종합하면 향후 5년간 연평균 668명의 의사인력이 추가 양성된다. 기존 의대 증원 인원 중 2024학년도 정원(3058명)을 초과하는 부분은 모두 지역의사로 선발된다.
이번에 양성되는 기존 의대의 신규 의사 증원 인력은 지역의사제도에 의해 지역의사로 선발·양성되게 되며, 재학기간 중 정부의 지원을 받고 졸업 후 지역 공공의료기관 등에서 10년간 복무하게 된다.
보정심이 의결한 의사 인력 양성 규모안이 교육부의 각 대학별 배정을 거쳐 2027년부터 의대 모집 정원에 반영·시행되면 2033년부터 2037년까지 총 3542명, 연평균 708명의 의사인력이 추가 배출된다. 구체적인 의대별 정원은 교육부의 배정위원회 심의 및 정원 조정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 등 절차를 거쳐 4월 중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의사인력 증원 결정은 우리 보건의료가 피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 봉착했다는 공통된 인식하에 협의와 소통으로 이루어낸 결과물”이라며 “이번 결정은 지역·필수·공공의료 개혁을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며, 교육부 등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조해 의사인력 양성 및 관련 대책을 충실히 이행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들끓는 의료계…“정부 강행 처리, 교육 부실 자초”
의대 정원 증원안 발표로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료계는 들끓었다. 의협은 보정심 회의 초기부터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가 내놓은 추계 결과의 근거가 부족하다며 “무책임한 결정을 강행한다면 상응하는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이날 보정심 표결 과정에서도 김택우 의협 회장은 기권 표를 던진 뒤 도중 회의장을 퇴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회장은 증원안 발표 직후 의협회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현재의 교육 환경은 이미 붕괴 직전이며, 정부의 강행 처리는 교육 부실을 자초하는 길”이라며 “향후 열악한 강의실과 실습실에서 양산될 질 낮은 교육 환경, 그로 인해 배출될 의사들의 자질 논란과 의학교육 붕괴의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게 있음을 분명히 선언한다”고 경고했다.
각 의대 전수조사에 착수할 것도 요구했다. 실제 교육이 가능한지 정부가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2027년엔 대규모 복귀 학생 발생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닥친다. 투명하고 공정한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현재 발표된 모집 정원보다 훨씬 적은 수만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날 것”이라며 “그 결과를 토대로 모집 인원을 다시 산정하라”고 촉구했다.
이외에도 의협은 △실질적인 조정 권한을 가진 의학교육 협의체 구성 △의료인력 수급추계위 전면 개편 △필수의료 살리기 대책 즉시 실행 등을 요청했다. 김 회장은 “정부는 이번 증원의 명분으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 차례”라며 “필수적인 제도 개선 없이 숫자만 늘리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정부가 이 부분들을 책임 있게 해결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실행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의협 집행부의 총사퇴 요구도 나왔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는 성명을 통해 “결과가 예견됐음에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은 의협 집행부의 책임이 크다”며 “비과학적 기준에 근거한 정부의 폭압과 이를 방조한 의협 지도부는 의료 붕괴의 공범이다”라고 비판했다.
김 회장의 거취 문제도 언급했다. 병의협은 “김 회장은 지난 1월 내부 회의에서 ‘증원 규모를 전공의와 회원들이 수용하기 어렵다면 자진 사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면서 “교수·전공의 대표들이 정부의 증원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더 이상 회장직을 유지할 명분이 없다”고 강조했다.
의대 교수들은 교육부와 복지부에 공개질의를 요청했다. 이들은 늘어나는 학생들을 가르칠 교원들의 부담이 심각하다는 입장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의대교수협)는 복지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에게 보낸 공개질의서를 통해 “2027학년도 재학생 수는 더 이상 증원하지 않더라도 보정심이 판단 기준으로 삼은 최대 증원율을 넘어 이미 정상적인 의학교육이 불가능하다”면서 “의대는 본과에서 매 학년마다 10% 내외의 학생이 유급되는데, 증원이 많은 대학에선 훨씬 더 많은 학생이 유급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2027년 전국 의대의 제적생 수는 제시된 숫자보다 훨씬 더 클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내놨다.
의대교수협에 따르면 2024년과 2025년에 휴학한 24·25학번 의대생은 총 1586명이다. 이 중 2025학년도 증원이 없었던 서울 지역 8개 의대의 휴학생을 11%(91명)로 가정하면 나머지 32개 대학의 24·25학번 휴학생 수는 1495명으로 추산된다.
의대교수협은 “교원, 유급학생 및 건물, 시설 등 제반 교육에 필요한 사안을 감안하면 더욱 정상적인 의학교육이 어렵다는 결론에 다다른다”면서 두 부처의 반박 보도자료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복지부 “의료계와 소통…의료 문제들 같이 해결”
정부는 의료계와 계속 소통하겠다는 입장이다. 정 장관은 “수급추계위에 의료계가 추천한 전문가가 과반수로 참석해 12번 정도 회의하고, 4번 정도 소위원회를 해서 수급 추계를 제안했다”며 “또 보정심의 7번 회의에 의협 회장이 위원으로 모두 참석해 의견을 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만큼 의료계도 관심을 가지고 공식적인 추계와 사회적 합의를 하는 위원회에 끝까지 참여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고 감사드린다는 말씀드린다”면서 “의료계도 이번에 발표된 안에 대해서 검토가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충분히 계속 설명하고 소통하며 정원만이 아니라 다른 의료 문제들을 같이 해결해 나갈 수 있게 협의하며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교육부는 의대생들의 교육 여건에 대해서 점진적으로 시설을 개선해나가고 있다고 답했다. 최은옥 교육부 차관은 “24·25학번이 더블링 돼서 그 부분이 가장 어려운 것으로 돼 있는데, 이 학생들이 임상실습에 들어가는 것은 2027학년도부터”라며 “이번에 증원을 배정할 때도 (각 대학별로) 시설 개선 계획을 받아서 평가하고, 그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점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학별 증원분 배분은 복지부와 교육부가 진행한다. 각 대학은 정원 조정에 대한 학칙 개정을 거쳐 4월 말까지 대학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변경된 2027학년도 모집인원을 제출해야 한다. 5월 말에는 이러한 사항이 모두 반영된 2027학년도 대입 수시모집요강을 발표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