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 오지급 사태, 스테이블코인 시대에 던진 경고장

빗썸 오지급 사태, 스테이블코인 시대에 던진 경고장

‘가상자산 신뢰 붕괴’ 경고…전통 금융으로 번질라
리스크 연결고리…스테이블코인 속도 조절 불가피
금융당국 ‘고강도 제도 개선’…정치권도 한 목소리

기사승인 2026-02-19 06:00:10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에서 발생한 초유의 대규모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를 계기로 업계 전반의 내부통제 취약성이 도마에 올랐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등으로 가상자산과 전통 금융시장이 연결되는 상황에서 기본적인 통제 장치조차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은 시장 신뢰를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자칫 가상자산 리스크가 전통 금융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18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빗썸은 지난 6일 자사 고객 이벤트 당첨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대리급 직원 실수로 ‘원’ 단위를 ‘비트코인’으로 잘못 입력했다. 이로 인해 이벤트에 참여한 249명 계좌에 총 62만개의 비트코인이 오지급됐다. 당시 비트코인 가격이 1개당 9800만원선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전체 오지급 규모는 약 60조원에 이른다. 

빗썸의 사고 인지와 대응 과정도 논란을 키웠다. 당시 빗썸은 오후 7시 리워드를 지급했고, 오지급 사실은 20분 뒤인 7시20분 인지했다. 이후 7시35분부터 거래·출금 차단에 착수해 40분께 완료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그러나 이용자 공지는 다음 날 00시23분에야 이뤄졌고, 사고 원인과 회수 현황은 새벽 4시30분 추가 공지됐다. 금융감독원이 오후 1시 현장 점검에 착수한 뒤에야 재발 방지 대책과 보상안이 공개됐다.

‘가상자산 신뢰 붕괴’ 경고등…전통 금융으로 번질라

이번 빗썸 사태가 시장에 주는 충격은 과거와 무게감이 다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스테이블코인의 등장에 따라 가상자산업권과 전통 금융시장의 연결고리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테더와 서클은 달러화에 가치를 고정해 발행하는 USDT, USDC를 시장에 내놨고, 국내에서도 이들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거래대금이 지속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가상자산 선두주자인 미국에서는 지난해 이른바 지니어스(GENIUS) 법안 통과와 함께 많은 메이저 금융기관이 스테이블코인 도입 또는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정책 과제로 선정되면서 금융기관들이 시장 선점을 위한 준비에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과 전통 금융기관의 연결이 점차 강화되는 추세다.

시장 일각에선 이른바 웩더독(Wag The Dog·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통상 투자업계에서 웩더독은 파생상품이 현물 가격을 쥐락펴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빗썸 사태는 유령 비트코인 오지급에 실제 현물 가격(시세) 급락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결을 함께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이후 현재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은행 등 전통 금융 시스템까지 리스크가 전이될 수 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웩더독 현상을 포함한 모든 사항이 다 가능했을 것”이라며 “디지털 금 역할을 수행하는 비트코인은 통제가 가능하지만, 스테이블코인 같은 경우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입력 오류나 팻 핑거 관련 사고가 발생할 시 걷잡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이미 스테이블코인의 가치 안정성과 준비자산에 관한 신뢰가 훼손될 시 코인런(대규모 인출 사태)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은은 지난해 6월 발표한 ‘2025년 상반기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 신뢰 훼손, 기술 오류, 관련 범죄 등이 나타날 경우 디페깅(연동 자산과의 괴리)과 대규모 상환 요구가 발생해 코인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또는 담보로 보유한 금융기관은 가치 하락에 따른 투자 손실이나 담보가치 하락 위험에 노출된다”면서 “스테이블코인 시장 내에서 발행사, 수탁업체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금융기관들은 유동성뿐 아니라 평판 및 운영 리스크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예금 중 상당 부분(2021년 말 기준 82%)이 가상자산 관련 기업 자금으로 구성됐던 실버게이트은행은 지난 2022년 가상자산시장 침체 및 FTX 사태로 유동성 및 평판 리스크를 겪은 뒤 자발적으로 청산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같은 우려가 제기된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가상자산 거래소가) 실제 블록체인상 자산 이동 없이 내부 장부상의 숫자만 오고 가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면, 거래소는 있지도 않은 코인을 팔아치우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뱅크런과 시장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 역시 “(이번 사태는) 현재 가상자산 시장 안정성이 얼마나 취약한지, 시장에 대한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빗썸 긴급 현안질의에 참석한 이찬진(앞줄 왼쪽 첫번째) 금융감독원장과 이재원(앞줄 왼쪽 두번째) 빗썸 대표이사. 김건주 기자

원화 스테이블코인 ‘속도 조절’ 불가피…은행 중심론 힘받나

빗썸 사태로 가상자산과 전통 금융을 연결하는 국내 원화 스테이블 도입은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거래소의 최우선 가치인 안정성과 정합성이 훼손된 데다, 출금 검증·리스크 통제·내부 검수 등 핵심 시스템의 미비가 연쇄적으로 드러난 영향이다. 

향후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위한 기본법 제정에 있어 거래소를 배제한 은행 중심의 컨소시엄 방침이 탄력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한은은 금융안정과 통화 질서 유지를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비교적 안정성이 높은 은행이 과반 지분(50%+1주)을 보유한 컨소시엄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은 과잉 규제라며 반대하고 있지만, 신뢰 원칙이 흔들린 국면에서 한은의 주장에 무게가 실릴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정치권에서도 은행 중심론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이번 사태를 보고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에 대해 가상자산거래소까지 확대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겠구나 생각했다”며 “이번에 혼동 지급된 비트코인은 62만개에 달한다. 장부상 보존량과 15배 차이가 난다. 신뢰성에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가상자산 업계 고위 관계자는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은행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열어주는 방향이지만 국내에서 거론되는 입법은 사실상 기존 은행만 허용하고자 하는 방향”이라며 “가상자산거래소 역할에는 큰 영향은 없겠지만, 원화 스테이블코인 매스어답션(대중 수용)이 이뤄질 경우, 기존 원화거래소의 가상자산사업자(VASP)+은행실명계좌로 인한 해자효과는 약해질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금융당국 ‘고강도 제도 개선’…정치권도 한 목소리

정부와 금융당국은 이번 빗썸 비트코인 오지급 사태를 가상자산업권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엄중한 사건으로 평가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빗썸 관련 정무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정부는 이번 사태를 가상자산 관련 리스크와 내부 통제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점이 드러난 매우 엄중한 사태로 보고 있다”라며 “긴급 대응반 중심으로 이용자 피해 발생 등을 모니터링하는 등 구체적 제도 개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빗썸 외에 다른 가상자산거래소들도 전수 조사할 방침이다. 권 부위원장은 “빗썸을 포함한 모든 가상자산거래소를 대상으로 가상자산 보유 및 운영 현황, 내부통제 전반을 점검하겠다”라며 “빗썸에 대해서는 이용자 보호 및 자금세탁 방지 업무 위반 등을 점검해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감원이 검사로 전환에 착수한 상태다. 시장 신뢰와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근본적 제도개선을 검토해 2단계 법안에 신속히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과거 국내 증권사에서 발생한 주문 에러 사고를 언급하면서 보완 의지를 피력했다. 삼성증권은 지난 2018년 4월 우리사주 배당금을 주당 1000원씩 지급하는 과정에서 직원 실수로 자사주 1000주를 배당한 바 있다. 일부 직원들이 이를 시장에 매도하면서 주가가 12% 가까이 급락해 도덕적 해이와 내부통제 부실 비판이 쏟아진 바 있다. 이 원장은 “삼성증권 사태 발생 당시 시스템상으로 총 발행 주식 수를 넘는 부분은 입력 자체가 안 되게 정비됐다”며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인 디지털자산기본법에서의 관련 내용 보완 의지를 표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상자산 거래 내부통제 기준 마련과 시스템 정교화를 위한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0일 정책조정회의에서 “현재 1100만 명 이상이 가상자산 거래소를 이용하고 있고, 향후 다양한 토큰증권 상품 및 스테이블 코인이 도입될 경우 거래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이달 중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하고 제정해 국민이 신뢰할 가상자산 거래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에는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부과, 주기적 가상자산 보유 현황 점검 의무화, 전산사고 발생 시 가상자산사업자 무과실 책임 규정,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이 담길 전망이다. 

업계에서도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가상자산거래소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휴먼 에러 측면이 강하나, 내부통제 부실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면서 “이를 차단하지 못한 내부 검증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부각된 만큼,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황석진 동국대 교수는 “제일 중요한 것은 내부통제다. 기존 특정금융정보법이나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는 내부통제에 대한 부분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번 디지털자산기본법에는 실질적으로 내부통제에 대한 부분을 성문화할 필요가 있다”라며 “운영 리스크에 대한 부분을 해소할 수 있도록 관리 감독 체계를 좀 더 규율해야 한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이나 자본시장법의 내부통제에 준하는 수준의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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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