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설 명절은 부모님의 일상 변화를 눈여겨볼 수 있는 중요한 시기다. 오가는 대화 속에서 이전과 다른 말버릇이나 행동이 보이지는 않는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계속 잊어버리는 것은 흔히 노화로 인한 것으로 가볍게 넘기기 쉽지만, 치매 위험을 높이는 경도인지장애와 같은 건강 이상 신호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선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동반 질환이 인지기능 저하를 급격히 악화시킬 수 있어 질환을 잘 관리하고 적극적인 치료가 요구된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경도인지장애는 치매(알츠하이머병) 발병 전 단계로, 인지기능은 다소 저하됐지만 일상생활은 유지 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국내 65세 이상 노인의 경도인지장애 유병률은 28%에 달한다. 노인 4명 중 1명 이상이 경도인지장애를 겪고 있는 셈이다. 급격한 고령화에 따라 추정 진단자 수는 2025년 약 300만 명에서 2040년에는 5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경도인지장애의 대표적인 증상은 기억력 장애다. 하지만 환자들은 기억장애로 인한 불편함은 있어도 전반적인 일상생활 능력에는 큰 문제가 없어 정상적인 노화로 인한 건망증과 구분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경도인지장애를 제때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건망증은 어떤 사실에 대해 세세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누군가 관련된 힌트를 줄 경우 금방 기억을 해낼 수 있다는 점이 경도인지장애와 구별된다.
이현아 이현아신경과의원 원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경도인지장애는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치매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은 단계로 인식해야 한다”며 “일반 노인의 연간 치매 전환율이 1~2% 수준인 데 비해,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매년 약 10~15%가 치매로 이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조기 진단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에선 경도인지장애 첫 증상부터 치매 진단까지 평균 3년 3개월이 소요되는 것으로 보고된다.
치매로의 전환 위험이 큰 경도인지장애는 초기에 진단하고, 적극적인 치료와 관리를 통해 인지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치료를 진행할 경우 질환 진행 속도를 줄이거나 회복을 기대할 수 있어 인지기능이 저하되고 이미 치매로 발전하고 있더라도 질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을 조절해야 한다.
경도인지장애 진단에는 신경심리검사가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지만, 정상 노화와 경도인지장애, 치매 간에는 공통된 부분이 많아 이를 서로 구분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이에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이나 뇌척수액(CSF) 등의 검사가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에 활용되고 있다. 해당 검사를 통해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단백질로 알려진 ‘아밀로이드 베타’의 축적이 확인될 경우 약물을 통해 알츠하이머병으로의 진행을 지연시킬 수 있다.
대표적인 약물로는 일본 에자이와 바이오젠이 공동 개발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가 꼽힌다. 이 약물은 알츠하이머병을 더 좋아지게 할 수는 없지만, 원인 조절 치료를 통해 질병의 진행을 지연시킬 수 있다. 이 원장은 “레켐비 치료 4차 이후부터 ‘머리가 맑아지고 집중하는데 어려움이 덜하다’고 얘기하는 환자들이 있고, 이들은 치료 시작 7~8개월에 추적 시행한 인지기능검사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다”며 “가족의 지지 덕분인지 환자들 스스로가 좀 더 생각하려 하고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려 하는 등 자발적 인지중재치료를 시행하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미 치매로 진행된 상태라고 하더라도 현재의 인지 기능을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세틸콜린분해효소 억제제’ 등을 활용한 약물 치료는 인지 개선, 일상 활동 기능 개선, 치매 중증도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이 원장은 “알츠하이머병은 질환이 진행되면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인 특성을 가진 질환”이라면서도 “치매 진단받았다고 해서 모든 가능성이 닫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엔 증상 진행을 늦추는 새로운 치료제들이 등장하면서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치료를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가족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 원장은 “경증 단계에선 모든 활동을 대신해 주기보다 환자가 남아 있는 기능을 스스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며 “중등도나 중증 단계로 진행되면 환자의 요구를 파악해 보다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을 마련해주는 역할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치매 돌봄은 혼자 감당하기엔 부담이 큰 만큼, 방문요양이나 주야간 보호 등 지역사회 돌봄 서비스와 공적 지원을 적극 활용했으면 한다”며 “특히 힘들다는 감정을 숨기지 말고, 의료진이나 치매안심센터와 공유하며 가족 스스로 지치지 않도록 돌보는 것도 중요하다. 가족이 지치지 않아야 환자와의 일상도 오래 유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