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 체질 바꾼 장덕현…‘고부가 전략’ 올해도 통할까 [기업 X-RAY]

삼성전기 체질 바꾼 장덕현…‘고부가 전략’ 올해도 통할까 [기업 X-RAY]

MLCC 가격 20% 급등·FC-BGA 1조 돌파
증권가 “2026년 영업이익 1.3조 가능”
11조는 출발점… 2026년이 ‘진짜 시험’

기사승인 2026-02-20 06:00:12
삼성전기 수원캠퍼스. 삼성전기 제공 

삼성전기가 ‘모바일 부품사’라는 낡은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졌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힘입어 고부가 제품 중심의 체질 개선에 성공하며 사상 최대 매출을 새로 썼다. 취임 5년 차를 맞은 장덕현 삼성전기 대표이사 사장의 “AI·전장 부품 전문 기업으로 재탄생하겠다”는 전략이 숫자로 입증됐다는 평가다.

다만 시장의 시선은 이미 다음 단계로 향해 있다.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 조짐 속에서, 중국 수요 둔화와 AI 투자 속도 조절 가능성이라는 변수까지 넘어설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2025년 연간 매출 11조3145억원, 영업이익 9133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0%, 영업이익은 24%나 급증했다. 특히 4분기 영업이익(2395억원)은 전년 동기 대비 108% 늘어나며 계절적 비수기마저 뚫어냈다.

AI 붐이 증명한 ‘고부가 전략’

실적 반등의 중심에는 AI 서버 수요 급증이 있다. 사업부문별로 보면 컴포넌트 사업부가 전년 동기 대비 22% 늘어난 1조3203억원을 기록했는데, AI·서버 및 파워용 MLCC 공급 확대가 주효했다. 패키지솔루션사업부는 17% 증가한 6446억원, 광학솔루션사업부는 9% 증가한 9372억원을 기록했다.

장 사장은 지난 1월 CES 2026 현장에서 “AI가 발전하면 하이 퍼포먼스로 가고, 이는 곧 하이볼티지(고전압)를 의미한다”며 AI 전용 고전압·고용량 MLCC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FC-BGA에 대해서도 “올해 하반기부터 가동률이 매우 타이트해질 것”이라며 “4~5년 전 PC 비중이 50% 이상이었던 것에 비해 앞으로는 데이터센터용 FC-BGA가 60~70%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전기의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제품. 삼성전기 제공

MLCC 슈퍼사이클 신호…가격 20% 급등

또 다른 숨은 공신은 ‘산업의 쌀’로 불리는 MLCC다. 일반 스마트폰에 1100개, 일반 서버에 2200개 수준이던 MLCC 탑재량은 AI 서버에 이르러 2만 개에서 최대 3만 개까지 폭증했다. 삼성전기는 이 시장을 겨냥해 고온·고압에 견디는 고부가 MLCC 비중을 공격적으로 늘렸다. 

시장에서는 2026년 MLCC 시장이 공급 부족 국면에 진입하며 ‘슈퍼사이클’을 맞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글로벌 MLCC 주문량은 전분기 대비 25% 증가했다. AI 서버를 중심으로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무라타와 삼성전기 등 주요 업체의 생산 라인 가동률이 최대치에 이르면서 공급이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기의 체질 변화도 수치로 확인된다. MLCC 매출에서 IT 비중은 2025년 53% 수준까지 낮아졌고, 산업·전장 비중은 47%까지 올라섰다. 증권가는 2027년 산업·전장 비중이 56%까지 확대될 것으로 본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기의 2026년 MLCC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5조7000억원, 8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2025년 추정치보다 매출은 10%, 영업이익은 40% 증가한 수치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이 2025년 12월 31일 부산사업장에서 창립 52주년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삼성전기 제공

장덕현의 ‘MiRAE’ 프로젝트… AI 이후 노린다

장 사장은 실적 개선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기는 2026년 설비투자(CAPEX)를 전년 대비 확대하고, AI 서버용 고부가 패키지 기판 증설과 전장용 MLCC 캐파 선행 확보를 위한 해외 신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올해 신년사에서 장 사장은 △글라스 기판 △소형 전고체 전지 △실리콘 커패시터를 아우르는 ‘미래(MiRAE) 프로젝트’를 공식화했다. 특히 세종 사업장에 구축된 글라스 기판 파일럿 라인이 본격 가동되면서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높인 차세대 패키지 시장 선점에 나선다.

특히 차세대 기판 기술로 주목받는 글라스 기판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기는 지난해 11월 일본 스미토모화학그룹과 글라스코어 제조를 위한 합작법인(JV) 설립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글라스코어는 기존 유기 소재 기판 대비 열팽창률이 낮고 평탄도가 우수해 고집적·대면적 첨단 반도체 패키지 기판 구현에 필수적인 기술로 꼽힌다. 합작법인은 삼성전기가 과반 지분을 보유한 주요 출자자로 참여하며, 2026년 상반기 내 JV 설립을 완료하고 양산 기반을 마련할 예정이다.

자동차 전자부품(전장) 시장 공략도 강화하고 있다. 자율주행 채택 증가로 전장용 MLCC 수요가 확대되는 가운데, 멕시코 카메라모듈 공장은 북미 전장 수요 대응을 목표로 하반기 양산에 들어간다.
 
중국 수요 둔화·AI 거품론은 리스크

리스크도 분명하다. 첫 번째 리스크는 중국 수요 둔화다. MLCC 시장에서 중국은 여전히 중요한 수요처인데, 중국 경기 둔화가 지속될 경우 중저가 IT 기기향 MLCC 수요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고부가 MLCC 공급 부족이 심화되면 중저가 IT용 MLCC 수요가 중화권으로 이동하며 전반적인 수급 개선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두 번째는 AI 인프라 투자 둔화 가능성이다. 골드만삭스는 2026년 AI 관련 설비투자 추정치를 5000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지만, 시장에서는 비용 효율성 문제로 투자 속도가 조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데이터 센터 전력 수요가 2030년까지 16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전력과 냉각 시스템 등 인프라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스마트폰 카메라모듈 사업의 변동성이다. 삼성전기의 광학솔루션사업부는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스마트폰 시장 성장 둔화와 중국 업체들의 추격으로 카메라모듈 시장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휴대폰 카메라 모듈 시장은 2026년 478억7000만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경쟁 격화로 마진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주주환원’으로 자신감 표출…2026년이 시험대

삼성전기는 실적 발표와 함께 배당 확대를 시사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1조3000억원 규모의 특별배당을 실시하면서, 삼성전기도 특별배당을 통해 배당소득 분리과세 요건을 충족시켰다. 특별배당을 더한 삼성전기의 연간 배당액은 1777억원으로 배당성향 25.2%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10% 이상 배당액이 증가한 수치로, 배당소득 분리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족했다. 배당 확대는 단순한 실적 반등을 넘어 안정적인 현금 창출 능력을 갖춘 ‘고부가 체질’로 완전히 바뀌었다는 선언이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기의 2026년 실적이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교보증권은 2026년 영업이익을 1조3000억원으로 예상했고, 키움증권은 전년 대비 41% 증가한 1조2891억원을 전망했다.

하나증권은 “고부가 MLCC 수요에 대응 가능한 메이저 업체들의 하반기 가동률이 90%대에 진입했다”며 “IT 세트 수요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고부가 제품 믹스 확대를 통해 2026년 증익 가시성을 확보했다”고 분석했다.​

장 사장이 추진해온 ‘고부가 체질’ 전환은 2025년 실적을 통해 일정 부분 성과를 확인했다. 다만 AI 인프라 투자 지속 여부, MLCC 수급 상황, 글라스 기판과 전장 사업의 시장 안착 속도 등은 여전히 변수가 남아 있다. 2026년은 삼성전기가 단기 실적 개선을 넘어 구조적 성장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이혜민 기자
hyem@kukinews.com
이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