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락가락’ 관세 정책이 K-푸드 수출 호황에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던 국내 식품업계는 관세율 자체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정책 변화에 더 큰 부담을 느끼며 대응 전략 마련에 고심하는 분위기다. 미국이 최대 수출 시장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관세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경우 가격·투자 계획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식품기업들은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으나, 관세율 자체보다 향후 방향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에 더 큰 혼란을 느끼는 분위기다. 관세 조치의 지속 여부와 추가 정책을 가늠하기 어려워지면서 중장기 사업 계획을 세우는 데 부담이 커졌다는 반응이다.
앞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각국에 부과해 온 상호관세 조치에 대해 위법 판결을 내렸다. 미국의 대규모 무역적자를 이유로 추진돼 온 전방위 관세 정책에 사법부가 제동을 건 셈이다.
관세는 유지, 방향성은 안갯속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다음 날 SNS에서 “전 세계 관세 10%를 허용된 최대치이자 법적으로 검증된 15% 수준으로 올리겠다”며 “이는 즉시 효력을 발휘한다”고 밝혔다. 이는 전날 상호관세를 대체하기 위해 각국에 10%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지 하루 만에 세율을 다시 5%포인트(p) 끌어올린 것이다.
그는 또 “향후 몇 달 안에 법적으로 허용되는 새로운 관세를 결정할 것”이라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15% 글로벌 관세’는 미국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한 것으로, 미국 동부시간 기준 24일 0시 1분(한국시간 같은 날 오후 2시 1분)부터 시행됐다. 이 법은 국제수지 불균형에 대응하기 위해 대통령이 최대 150일 동안 최고 15%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적용 기간을 연장하려면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다른 법적 수단을 활용해 관세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향후 5개월 동안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각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 조사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특정 수입 품목의 국가안보 영향 검토를 진행한 뒤, 이를 토대로 새로운 관세 부과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겉으로는 기존과 유사한 15% 수준의 관세가 유지되는 모습이지만, 향후 연장 여부나 추가 조치 가능성을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기업들의 고민은 오히려 커졌다. 관세 정책이 단기간에 변경될 가능성이 커지자 가격 전략과 투자 계획을 장기적으로 설계하기 어려워졌고, 업계 전반에선 ‘수치보다 불확실성이 더 큰 리스크’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미국은 K-푸드+의 최대 수출국으로 꼽힌다. 지난해 미국 수출액은 23억 달러로 전체(136억 달러)의 약 17%를 차지했다. K-푸드+는 농식품(신선·가공)과 농산업(동물용 의약품·농기계·농약·비료 등) 수출을 합산한 개념이다. 특히 농식품 수출은 2015년 이후 10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오며 지난해 처음으로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국내 생산 의존 기업 ‘긴장’
전체 매출의 약 80%를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삼양식품은 미국에 판매 법인을 두고 있으나 현지 생산공장이 없이 국내 생산 물량을 수출하는 구조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세율만 놓고 보면 기존 15% 수준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문제는 관세 수치보다 정책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세는 개별 기업이 자체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사안인 만큼 정부 대응을 지켜보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현지 생산 기반 보유 여부에 따라 관세 영향 체감도는 다소 엇갈린다. 대상의 ‘종가 김치’는 2022년 이후 김치 수출 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으며, 최대 시장 역시 미국이다. 대상은 2022년 국내 식품업계 최초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대규모 김치 공장을 완공하며 현지 생산 체제를 구축했다. 해당 공장은 연간 2000톤 규모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대상 관계자는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고환율 등의 영향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며 “이에 미국 현지 생산 비중 확대를 비롯한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는 한편, 수출 시장 다변화 등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관세율 자체보다 정책 변동성이 커진 만큼 단기 대응보다는 공급망 재편과 시장 다변화 등 중장기 전략 검토가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 비중이 큰 기업일수록 관세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지역 다변화와 비용 절감, 현지 생산 검토 등 여러 선택지를 놓고 내부적으로 대응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세 리스크 속 ‘진출 방식’ 재검토해야
전문가는 관세 부담이 커질수록 기업들이 수출과 현지 생산 사이에서 비용 구조를 다시 점검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관세 수준뿐 아니라 투자비, 운영 효율성, 거래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해 해외 진출 방식을 재조정하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의 해외 진출은 일반적으로 수출을 시작으로 현지 생산 거점을 구축하는 단계로 발전한다”며 “매출 규모가 커지고 손익 개선 필요성이 커질수록 관세 비용과 현지 생산 비용을 비교해 어떤 방식이 더 유리한지 전략적으로 판단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세 부담이 현지 생산 투자 비용보다 낮다면 수출 중심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지만, 거래비용과 운영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했을 때 해외 직접투자가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되면 생산 거점을 옮기는 선택도 가능하다”며 “다만 업종과 기업 규모에 따라 최적의 전략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관세로 발생하는 비용을 어떻게 분산하고 흡수할지에 대한 종합적인 전략 판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