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중동 지역에서 발생한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에 역사상 유례없는 폭락장을 선보인 직후 급등세로 전환했다. 서킷브레이커를 맞이한 전날과 달리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되면서 ‘패닉 셀링’ 현상은 일부 벗어난 모양새다. 증권가에서는 단기 변동성은 여전할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그동안 국내 증시 상승세를 주도해 온 반도체 대형주의 이익 성장 동력이 여전한 점에서 실적 부문에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한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9.63%(490.36p) 급등한 5583.90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5715.30까지 치솟았으나, 상승폭을 일부 반납한 상태로 장을 종료했다. 코스닥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4.10%(137.97p) 오른 1116.41에 마감했다. 코스닥 역시 장중 1149.54까지 오른 뒤 소폭 하락한 상태로 마감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은 전날 역사상 유례없는 하락장을 맞이한 뒤 급반등으로 흐름을 전환했다. 전날 코스피는 12.06%(698.37p) 급락한 5093.54로 떨어지면서 글로벌 증시를 뒤흔든 초유의 악재였던 미국 9·11 테러 직후인 지난 2001년 9월12일(-12.02%)을 넘어선 역대 최대 낙폭을 선보인 바 있다. 코스닥 역시 14.00%(159.26p) 급락한 978.44로 마감해 2020년 3월19일 기록한 직전 역대 최대 하락률인 -11.71%를 넘어섰다.
특히 전날 프로그램매도 호가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와 서킷 브레이커(매매거래중단)를 겪었던 점과 다르게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모두 개장 직후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되면서 V자 급등 흐름을 보였다. 이날 오전 9시6분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각각 올해 들어 6번째, 4번째 발동이다.
韓 증시 시총 상위주 일제히 ‘급등’…“지정학적 리스크 완화·정책 기대감”
폭락장에 시름 앓던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도 급반등에 성공했다. 유가증권시장 시총 상위 10개 종목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전 거래일 대비 11.27%, 10.84% 상승한 19만1600원, 94만1000원으로 마감했다. 이외에도 현대차(9.38%), 삼성전자우(12.02%), LG에너지솔루션(6.91%), 삼성바이오로직스(8.64%), SK스퀘어(11.64%), 한화에어로스페이스(4.38%), 기아(6.19%), HD현대중공업(9.39%) 등이 상승했다.
코스닥도 마찬가지다. 코스닥 시총 상위 10개 종목은 모두 두 자릿수 이상의 상승세를 선보였다. 에코프로(20.18%), 알테오젠(12.05%), 에코프로비엠(18.00%), 삼천당제약(23.41%), 레인보우로보틱스(18.89%), 에이비엘바이오(15.83%), 리노공업(20.32%), 코오롱티슈진(12.29%), 리가켐바이오(17.36%), HLB(10.72%) 등이 크게 뛰었다.
이같은 급등세의 주요 원인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공습 여파가 확전 우려로 번지면서 발생한 지정학적 긴장감이 완화된 점과 전일 폭락장에 따른 저가 매수세 유입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란 정부는 중동 주요 산유국들의 원유 수출 루트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선언하면서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에 대한 공격을 예고한 바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수입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내 특성상 경제 전반에 리스크를 가중시키는 악재로 작용한다. 이란은 지난 4일(현지시간) “해역에서 최소 10척 이상의 유조선이 미사일 공격을 받아 불에 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란의 위협에 따른 유가 불안이 가중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에 대해 미 해군의 군사적 보호를 제공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필요한 경우 미 해군이 가능한 한 빨리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 호송을 시작할 것”이라며 “즉시 효력을 발휘해, 미국 국제금융개발공사(DFC)에 걸프 지역을 통과하는 모든 해운, 특히 에너지 운송에 대해 정치적 위험 보험 및 보증을 매우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권희진 KB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대안이 유가 불안을 일단 완화시켰다. 다만 하향 안정화 되기 위해서는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가능해져야 할 것”이라며 “호르무즈 해협 폐쇄 장기화는 이란 혁명수비대에도 통치자금, 운영 예산 측면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수반한다. 이에 (이란이) 이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면서 물밑에서 협상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이재명 대통령이 증시 불안정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대규모 금융 안정조치 집행을 시사한 점도 냉각된 투자심리 완화를 이끄는 배경 중 하나로 작용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주식과 환율 등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자본시장 안정과 체질 개선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가속화하고 자금시장 불안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마련된 100조 원 규모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신속히 집행·관리해 달라”고 강조했다.
임정은 KB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는 양일간 양방향으로 변동성이 극심한 모습이다. 코스닥은 역대 상승률 1위를 기록했고, 코스피는 상승 종목 비율이 95.3%에 달하는 등 대규모 강세장을 시현했다”라며 “이재명 대통령이 주식 및 환율 변동에 대응하기 위한 100조원 금융 안정조치 집행을 지시했다는 소식에 따른 정책적 기대감도 일부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숨돌린 코스피·코스닥…단기 변동성에도 “반도체가 이끈다”
국내 증시가 이날 급반등하면서 한숨 돌렸지만, 여전히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만연한 상황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중동 지역 지정학적 리스크는 갑작스러운 급락장을 또다시 시현할 수 있는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단기 변동성은 필연적일 것으로 바라보면서도 증시 상승장을 견인한 반도체 이익 성장 동력이 여전한 점에서 코스피 이익 모멘텀은 훼손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아직 투자심리가 온전히 회복되지 못한 가운데 중동발 뉴스플로우, 미국 인공지능(AI) 종목 노이즈 등으로 추가적인 변동성 확대 압력에 직면할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하지만 밸류에이션상 저평가 영역에 도달했고, 반도체 중심의 코스피 이익 모멘텀이 훼손되지 않았음을 감안해야 한다. 현재 주가 레벨부터 반도체, 조선, 방산, 금융 등 주도주 업종 중심으로 대응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도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충돌 장기전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이익은 상승하고 있다”라며 “과거 70년대 오일쇼크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AI 투자 및 반도체 수요가 급격히 감소할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오히려 추가적인 병목 인플레는 가격 전가력이 강한 반도체 가격을 추가로 상승시키는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