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 모두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며 재정건전화 정책의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여전히 천문학적 규모의 부채와 차입금을 안고 있는 가운데, 산업계와 정부 등 이해관계자들의 요구가 엇갈리면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5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해 매출액 97조4345억원, 영업이익은 13조5248억원을 기록했다. 각각 전년(2024년) 대비 4.3% 증가, 61.7% 증가한 수준이다. 영업이익은 기존 최대 실적인 지난 2016년(12조15억원) 기록을 9년 만에 경신했다.
이번 실적과 관련해 한전은 연료가격 안정화, 2024년 요금조정 영향, 재정건전화 계획의 충실한 이행 노력 등으로 인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제 연료가격 안정에 따라 전력도매가격(SMP)이 하락해 자회사 발전사 연료비는 3조1014억원 감소했고, 민간발전사로부터 사들이는 구입전력비도 6072억원 줄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한전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한전의 지난해 결산 실적 발표 이전부터 역대 최대 실적 컨센서스(증권가 전망치)가 예상되면서, 산업계의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 목소리가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1년 ㎾h(킬로와트시)당 105.5원을 기록하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3년 동안 7차례에 걸쳐 70%가량 올랐다.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181.1원이다.
이에 전기를 많이 사용하면서도 최근 업황이 긍정적이지 못한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에 대한 인하 요구가 지속됐다. 2024년 10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9.7%) 이후 상위 20대 법인의 전기요금만 연간 1조2000억원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한전 역시 2021년~2023년 연료비 급등에 따른 영향으로 여전히 206조원의 부채와 130조원에 달하는 차입금을 떠안고 있어 산업계 입장을 적극 수용하긴 어려운 입장이다. 한전은 하루 이자비용으로만 119억원을 지출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된 실적 구조로 인해 배당에 있어서도 정부부처 간 시선이 나뉘고 있다. 이번 실적 발표에서 한전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배당을 실시하며, 전년(주당 213원, 총배당액 약 1367억원) 대비 배당액을 대폭 늘려 주당 1540억원, 총배당액 9886억원의 계획을 밝혔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적자로 인해 배당을 하지 못한 데 따른 주주환원 정책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배당액을 결정하기 위해 지난달 열린 정부 배당협의체에선 재정 확충을 위해 배당을 확대해야 한다는 재정경제부와, 부채·차입금 규모를 고려해 배당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입장이 나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한전의 소관부처인 기후부는 한전이 국가 재생에너지 확대 및 첨단산업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송배전망 투자를 앞두고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년)’에 따르면 향후 송·배전 설비에 약 113조원이 투입될 전망이다.
전력업계 한 관계자는 “한전의 부채·차입금 규모가 여전히 크고 향후 투자 계획이 산적한 상황이지만, 그간 주주 배당을 실시해오지 못한 데 따른 부담감도 있었을 것”이라며 “상충된 두 의견 사이에서, 실적이 발생했을 때 주주에게 환원하자는 큰 방향을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에너지 산업이 변화하는 가운데 한전에 집중된 업무 또는 제도를 개편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다. 기본적으로는 전기요금 결정 체계에 원가가 반영되는 ‘연료비 연동제’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전기요금 구성 항목에 연료비조정요금을 만들어 해당 분기 직전 3개월간 유연탄, 액화천연가스(LNG) 등 연료비 변동 상황을 전기요금에 탄력적으로 반영(㎾h당 ±5원 범위)하고 있으나, 사실상 물가와 정치적 판단에 따라 정부가 결정(권고)하고 있어 결정주체인 전기위원회의 독립성을 강화해 원가에 맞춰 적기에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홍종 단국대학교 교수(한국자원경제학회장)는 “전력산업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단기적 조치가 아니라 전기요금의 가격기능 회복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불합리한 용도별 요금제를 폐기하고 소비자별로 전력생산, 송전, 배전의 총괄 원가를 반영해 부과하는 소매요금제도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시간대별 요금 확대, 지역별 전기요금 도입, 대형 전력수요자 맞춤 요금제 등 전력시장 구조를 개편해 기존 한전 중심의 공급 구조를 확대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최근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한전으로부터 벗어나 직접 전력을 구매하는 탈한전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며 “이는 현행 전력시장이 기업의 니즈에 맞는 상품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신호로 분산에너지시대와 에너지 신산업화에 맞게 기업들의 전기요금 선택권을 다양화하고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