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여파로 국내 기름값이 들썩이면서 서울 강남, 용산 등 일부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넘어서자 지역 커뮤니티에는 ‘저렴한 주유소’를 찾는 글이 잇따랐다. 기름값이 싼 곳이 있다면 원정길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호소도 눈에 띄었다. 중동에서 들려오는 포연 가득한 뉴스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 내 차의 계기판과 이번 달 관리비 고지서를 압박하는 현실이 됐다.
정부가 30년 만에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라는 강수를 꺼내 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산업통상부는 13일 0시부터 휘발유 리터당 1724원,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의 가격 상한선을 설정했다. 이는 정유사가 제출한 평균 공급가격보다 휘발유는 109원, 경유는 218원, 등유는 408원 낮은 수준이다.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법으로 기름값을 묶는 조치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기름값은 단순한 에너지 가격을 넘어 물가 전반을 움직이는 핵심 변수다. 운송비와 생산비를 통해 생활물가로 빠르게 확산된다. 화물 운송 종사자나 농가처럼 연료비 비중이 높은 계층에는 생계와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국제 유가가 요동치며 서민 경제의 부담이 커지자 정부가 직접 가격 안정장치를 꺼내 든 셈이다.
하지만 상황은 결코 단기 충격으로 끝날 분위기가 아니다. 정부 발표가 채 식기도 전에 국제 정세는 더 거칠게 움직였다.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취임 후 첫 공개 메시지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란의 유조선 공격과 에너지 시설 타격까지 이어지면서 세계 에너지 수송로를 둘러싼 긴장이 다시 높아졌다.
국제 유가는 즉각 반응했다. 이날 5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하루 만에 9% 넘게 급등하며 배럴당 100달러 선을 다시 넘어섰고,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역시 95달러대까지 치솟았다. 한국 정유사가 주로 수입하는 중동 두바이유 가격은 이달 들어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월가에선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유가가 130~15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그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한국 경제에는 더욱 민감한 문제다. 전쟁의 불길이 길어질수록 부담은 고스란히 국내 경제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가격을 법으로 묶어두긴 했지만, 중동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 보이는 지금 상황에서는 이런 처방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우려가 적지 않다. 특히 국제 유가가 더 상승하는 상황이 온다면 국내 가격 상한선과 실제 시장 가격 사이의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정부는 최고가격제를 2주 단위로 운영하고 연장 여부와 가격은 시장 상황을 반영해 다시 정합한다지만, 실시간으로 널뛰는 유가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 차이는 결국 정유사와 주유소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 있다. 가격은 시장의 신호다. 이를 인위적으로 누르면 소비는 늘고 공급은 줄어들 수 있다. 팔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가 된다면 판매 기피나 공급 축소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는 매점매석 단속과 수출 물량 제한 등을 통해 시장 물량 감소를 막겠다는 방침이다. 정유사 손실을 재정으로 보전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했다. 다만 손실 정산은 분기 단위로 이뤄진다. 심사와 정산 절차까지 감안하면 일정 기간 손실을 자체적으로 감수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정책의 종료 기준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시중 가격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해제를 검토할 수 있다는 언급은 있었지만 실제 결정은 국제 유가와 중동 정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은행 역시 최고가격제에 대해 신중한 시각을 보였다. 한국은행은 “일시적으로 소비자 부담을 줄여준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면서도 “도입 기간이 길어질수록 초과수요 발생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석유 최고가격제는 장기적인 해법이라기보다 위기 상황에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임시 대응에 가깝다. 중요한 건 가격을 묶는 게 아니라 그 사이 무엇을 준비하느냐다.
유류세 탄력 조정이나 취약 계층에 대한 직접적인 에너지 지원,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같은 대안이 함께 논의돼야 하는 이유다. 가격을 억누르는 정책만으로는 외부 에너지 충격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 없다.
30년 만에 다시 꺼내 든 최고가격제가 민생을 지키는 안전판이 될지, 시장에 또 다른 부담을 남길지는 앞으로의 정책 운용에 달려 있다. 위기 상황일수록 시장과 균형을 맞추는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