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대형마트만큼 무섭죠”…골목상권 덮친 저가 유통 공포 [식자재마트 급성장의 그림자②]

“이젠 대형마트만큼 무섭죠”…골목상권 덮친 저가 유통 공포 [식자재마트 급성장의 그림자②]

기사승인 2026-03-23 06:00:08 업데이트 2026-03-23 13:28:24
서울 시내 한 재래시장. 쿠키뉴스 자료사진

지난 19일 찾은 서울 양천구 경창달빛시장. 평일 오후 시간대인 만큼 북적이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시장 골목은 너무도 한산한 모습이었다. 좌판마다 채소와 과일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지만, 발걸음을 멈추는 손님은 많지 않았다. 상인들은 가게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거나, 물건을 다시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간간이 손님이 들어오면 짧은 흥정이 오가고, 다시 조용해지는 분위기가 반복됐다.

“식자재마트는 물량을 한 번에 많이 들여와서 싸게 풀 수 있잖아요. 우리 같은 동네 가게는 그렇게 장사를 못 하니까 가격 경쟁이 안 되죠.”

이곳에서 가공식품을 판매하는 A씨는 말을 잇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예전에는 필요한 만큼만 조금씩 사가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한 번에 많이 사서 쟁여두고 쓰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경창달빛시장과 인근 식자재마트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10여 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로 붐비던 시장은 눈에 띄게 한산해졌다.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에 이어 식자재마트까지 들어서면서 매출은 빠르게 줄었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이 같은 변화는 전통시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소 슈퍼와 편의점, 유통 도소매업 전반에서 중소 상인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구로동에서 30년 가까이 슈퍼마켓을 운영해온 김모씨(70)는 “예전에는 전통시장, 대형마트, 중소 슈퍼들이 세일을 앞세워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절이었다”며 “그런데 식자재마트가 5~6년 전쯤 인근에 들어서면서 일반 고객과 업소 고객을 모두 붙잡아 사실상 독식하는 구조가 됐다”고 토로했다. 

서울 시내 한 식자재마트. 이예솔 기자

식자재마트가 들어선 이후 김씨의 매출은 20~30%가량 줄었다. 일부 품목을 동네 슈퍼에서 구매하던 자영업자들이 대부분 식자재마트로 구매처를 옮기면서다. 특히 음식점 거래처 이탈이 두드러졌다는 설명이다.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중소 유통업체가 나눠 갖던 수요는 점점 한쪽으로 쏠리고 있다.

규제 사각지대를 파고든 식자재마트의 영향력은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자영업자 대상 공급에 머물던 역할을 넘어 일반 소비자까지 끌어들이며, 이른바 ‘동네형 대형마트’로 자리 잡았다.

식자재마트는 법적으로 규정된 업태는 아니지만, 통상 식료품을 취급하는 1000㎡ 이상 3000㎡ 미만 규모의 매장을 일컫는다. 본래는 식당·급식업체 등에 저렴한 식자재를 공급하는 유통 채널이었으나,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외형을 키우며 소비자 시장까지 확장했다. 

성장세도 가파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주요 식자재마트 3사(푸디스트·장보고식자재마트·세계로마트) 중 ‘식자재왕도매마트’를 운영하는 푸디스트의 지난해 매출은 1조766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7.1% 증가했고, 장보고식자재마트는 지난 2014년 1818억원에서 지난해 4502억원으로 147.6% 성장했다. 같은 기간 세계로마트 역시 742억원에서 1249억원으로 68.3% 늘었다.

가격 압박·거래 구조 불균형…소상공인 부담 가중

일부 식자재마트는 매장 면적을 3000㎡ 미만으로 유지해 ‘대규모 점포’ 규제를 피하고 있다. 있다. 이 때문에 의무휴업이나 영업시간 제한 없이 24시간 연중무휴로 문을 열 수 있고, 표준계약서 작성 의무도 적용받지 않는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소비자 접근성과 편의성 측면에서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소비자 수요가 식자재마트로 몰리면서 가격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식자재마트가 저가 미끼상품을 앞세우고, 그 부담이 고스란히 유통 소상공인에게 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가격 경쟁이 심화될수록 납품 단가는 낮아지고, 거래 조건도 까다로워지는 구조다.

서울 시내 한 식자재마트. 이예솔 기자

경기 광명시에서 계란 도소매업을 하는 B씨는 계란을 대표적인 ‘미끼상품’으로 꼽았다.

“3980원, 4980원 같은 가격이 한 번 나오면요. 주변 상권 전체가 다 영향을 받습니다.”

그는 “오픈 세일이나 감사 세일 등 각종 행사 때마다 계란 가격을 낮추는데, 결국 부담은 유통업자에게 돌아온다”며 “소상공인이 계란 유통의 70%를 맡고 있지만 협상력이 약하다 보니, 마트가 손해를 보지 않도록 납품 단가를 맞춰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980원에 판매하면 3700원 수준으로 납품하게 되고, 카드 수수료 등을 제외한 손실은 결국 유통업자가 떠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거래 구조 자체가 소상공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대형마트는 영업시간이나 휴무 등 일정한 제약을 받지만, 식자재마트는 그런 규제가 없어 경쟁 환경이 다르다”며 “식자재마트가 골목상권을 장악하면서 납품 구조도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매장은 물건을 일부 매입하고 판매 후 남은 물량을 다시 돌려주는 ‘반사입’ 방식을 활용하고, 상황에 따라 완사입과 병행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판매 부진에 따른 재고 부담이 납품업체로 넘어가는 구조다. 거래 조건에 따라 마트와 납품업체 간 부담이 달라지면서 유통업자들의 리스크는 더욱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결국 이러한 구조 변화로 농·축수산물 등 주요 업종 전반에서 영향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이예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