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데이터에도 ‘코어’가 있다 [이재환 박사의 k-컬처 & 관광⑦]

관광 데이터에도 ‘코어’가 있다 [이재환 박사의 k-컬처 & 관광⑦]

기사승인 2026-03-23 13:00:03 업데이트 2026-03-23 14:28:47

17년 만의 환희가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한국 야구 대표팀의 WBC 8강전이 열린 지난 14일(한국시간) 스코어보드가 7회 10대 0을 알렸고 승부는 콜드게임으로 종료됐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격언이 다시 한 번 증명된 경기였다. 이날 아침 아쉬운 경기를 보는 동안 자연스럽게 관광 데이터를 떠올렸다.

한국은 야구를 향한 관심이 뜨거운 국가다. 특히 일본과의 대전이 흥행을 보이는 가운데 관광 산업계에서는 또 다른 한일전이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인바운드 관광 경쟁이다. 두 나라 모두 같은 아시아 원정 수요를 둔 상태에서 항공 좌석을 늘리고 비자 규제를 완화하며 마케팅 예산을 쏟아 붓는다. 그러나 실제 시장을 들여다보면 이 싸움의 승패는 예산의 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갈린다.

일본 출신 메이저리그 에이스인 야마모토 요시노부의 트레이닝 철학과 관련해선 역설적인 질문이 전해진다. 그의 코치는 “운동을 하는데 왜 부상을 당하는가? 운동을 하면 더 건강해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투수는 공을 많이 던질수록 팔꿈치가 망가진다. 그러나 야마모토의 훈련은 반대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 팔이 아닌 몸의 중심(Core)을 찾고 다리에서 골반, 몸통을 거쳐 팔로 이어지는 운동역학적 연결(Kinetic Chain)을 통해 힘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한다. 중심을 찾으면 힘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관광 데이터도 다르지 않다. 지표를 늘리는 것은 분석 능력이 아니라 분석 피로를 만들 뿐이다.

이 철학을 관광에 적용해 보자. 왜 데이터 분석을 하는데 시장이 보이지 않는가. 대부분의 관광 보고서는 국가별 방문객 수, 소비액, 체류일수, 방문 목적, 숙박 유형, 교통 이용에 이르기까지 수십 개의 지표를 나열한다. 그렇게 지표는 풍성하지만 시장은 보이지 않는다. 팔 힘으로만 공을 던지는 투수처럼, 팔은 바쁘지만 공은 느리고 결국 부상이 찾아온다.

관광시장에도 중심축이 있다. 많은 기관이 집중하는 방문객수 나 소비액을 늘리려면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지표를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항공 좌석 공급력이다. 많은 국가의 관광 정책이 실패하는 이유는 ‘항공 좌석 → 입국 가능 인원 → 실제 방문객 → 체류 패턴 → 소비 구조’ 순서를 거꾸로 보기 때문이다. “관광객을 늘리자”는 목표는 있지만 좌석을 늘리는 전략은 없다. 투구로 비유하자면 공을 더 세게 던지려 하지만 하체와 코어 훈련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힘은 오히려 역방향으로 작용하며 어깨를 망가뜨린다.

최근 관광 시장에서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요일 분산’ 현상이다. 과거에는 관광객이 주말에 몰렸지만 최근에는 평일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일면으로는 단순한 여행 트렌드처럼 보일 수 있는데 체인을 따라가 보면 그 배경에는 LCC 노선 확대, 재택 근무 보편화, 장기 체류형 관광 성장이라는 구조적 변화가 숨어 있다. 관광은 하나의 지표가 아니라 흐름으로 읽어야 한다.

야마모토의 훈련법에는 억지로 힘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도 있다. 좋은 분석 보고서는 정반대 방향을 향한다. 그래프 40개와 지표 100개를 채워 넣은 보고서보다 그래프 3개로 핵심 인사이트 하나를 명료하게 드러내는 보고서가 더 강력하다. 맥킨지 스타일 보고서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좋은 분석은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핵심만 남기는 과정이다.

투수는 공을 던지기 직전까지 힘을 비축한다. 릴리즈 순간에 이르러 그 힘을 폭발시킨다. 데이터 분석도 같은 구조다. 패턴 발견에서 시작해 가설을 세우고 교차 검증을 거쳐야 비로소 정책 인사이트가 터져 나온다. “방한 관광객이 늘었다”는 단순한 보고는 의미가 없다. “방한 관광 증가의 핵심 원인은 외국인이 아니라 내국인의 항공 좌석 점유율 변화였다”는 분석이 나오는 순간 시장 구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관광시장은 수백 개의 지표로 움직이지 않는다. 몇 개의 중심축이 시장을 움직인다. 관광 데이터 분석가의 역할은 숫자를 많이 보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중심을 찾는 것이다. 어쩌면 관광 데이터를 읽는 일은 투수가 공을 던지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날 8강전 경기가 준 교훈이다.


[이재환 박사 약력]

현 고양시 문화재단 선임직이사
현 강남구 관광진흥자문위원회 위원

전 한국관광공사 부사장
전 경기도청 도지사 경제특별보좌관
전 서울시립대학교 겸임교수 
전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전 KT 경제경영연구소 연구위원
전 사단법인 한국창업진흥협회 초대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