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의 대표작 중 하나인 <에드워드 달리 보이트의 딸들>은 전통 초상화의 틀을 벗어난 대담한 구성을 보여준다. 네 자매는 현관 홀이라는 애매한 공간에 있는데, 이는 공사(公私)의 경계가 흐려지는 장소다. 인물들은 서로 가까이 있지만 넓은 구도 속에서 고립된 듯 보이며, 왼쪽으로 들어오는 빛은 표면을 반짝이며 동시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앞의 밝은 공간과 뒤편의 희미하게 드러나는 응접실은 긴장감을 형성한다. 커다란 청화백자 꽃병은 장식을 넘어 인물들의 존재감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며 공간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이러한 구도와 빛의 실험은 관람자들에게 낯설고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초상화가 단순한 재현이 아닌 심리적·사회적 의미를 담아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882년 가을 파리에서 완성된 이 작품은 사전트가 프랑스에서 그린 미국인 거주자 초상화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사전트는 에드워드 달리 보이트(Edward Darley Boit) 부부와 가까운 사이였고, 그 인연이 작품으로 이어졌다.
남편 네드(Ned: 애칭)는 하버드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변호사직을 버리고 화가의 길을 택했고, 아내 메리 루이사 쿠싱 보이트(Mary Louisa Cushing Boit)는 활발한 성격으로 ‘파리의 아메리카인’으로 살았다.
보이트 가족은 보스턴에서 중국 무역으로 축적한 재산을 상속받은 덕분에 파리 8구의 고급 주택가에서 생활할 수 있었고, 그들의 아파트 현관은 사전트의 캔버스 배경이 되었다. 화가는 그곳에 네 자매를 배치했는데, 메리 루이자(8세), 플로렌스(14세), 제인(12세), 줄리아(4세)가 각기 다른 위치에서 묘사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소녀의 얼굴이 의도적으로 가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전통 초상화의 규범과 정면으로 배치되며, 인물들 사이의 연결성이 부족한 듯한 구도와 함께 당시 평론가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가족 초상화가 아니라, 인물과 공간, 빛과 심리적 거리감을 탐구한 실험적 시도로 평가되며 사전트의 야심작이 되었다.
사전트는 전통적인 구도와 현대적인 감각을 동시에 담아내기 위해 독특한 기법을 사용했는데, 그 뿌리는 17세기 스페인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에게서 찾을 수 있다. 벨라스케스는 19세기 프랑스에서 특히 존경받았고, 사전트 역시 그의 작품을 직접 연구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파리에서의 정규 훈련을 마친 뒤, 사전트는 마드리드로 건너가 프라도 미술관에서 필사 화가로 등록했다. 1879년 가을 약 한 달 동안 그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집중적으로 모사했는데, 그 가운데는 대표작 〈시녀들〉(Las Meninas, 1656)도 포함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인판타 마르가리타 테레사(margarita Teresa)가 수행원들에 둘러싸인 장면은, 훗날 보이트 자매를 공간 속에 흩어 배치한 사전트의 구도와 깊은 연관성을 보여준다.
사전트의 스승 카롤루스 듀란이 제자들에게 “벨라스케스, 벨라스케스, 벨라스케스, 끊임없이 연구하라!”고 강조한 일화는 그의 예술적 뿌리를 잘 보여준다.
이 그림은 공간과 시선의 퍼즐로 유명하다. 어두운 방 안에서 사랑스러운 마르가리타 테레사가 시녀들, 난쟁이들과 함께 서 있고, 뒤편에는 역광 속에 인물이 들어오거나 나가는 듯한 장면이 있다. 거울에는 펠리페 4세와 왕비의 모습이 비치는데, 이들이 모델인지, 혹은 단순한 등장인물인지 해석이 분분하다. 왼쪽에는 커다란 캔버스 앞에 서 있는 벨라스케스 자신이 등장해, 그림 속 그림을 그리는 듯한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시녀들〉은 관람자에게 “누가 주인공인가, 무엇을 그리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초상화와 장르화의 경계를 흔든다.
사전트가 이 작품을 연구하며 얻은 통찰은 훗날 〈에드워드 달리 보이트의 딸들〉에서 공간과 인물의 관계를 실험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즉, 벨라스케스의 다층 구도와 시선의 교차가 사전트의 현대적 초상화 실험에 직접적인 영감을 준 셈이다.
사전트는 벨라스케스에게서 배운 공간의 신비로운 구성, 어둡고 차분한 색조, 그리고 인물이 관람자를 직접 응시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2025년 메트로폴리탄 전시에는 두 그림이 함께 걸렸다.
하지만 사전트의 시선은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동시대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의 <벨릴리 가족>을 비롯한 실험적 초상화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드가는 인물들을 전통적인 중심 구도에서 벗어나게 배치하고, 화면의 중심을 비워두거나 비대칭적으로 구성하며 관람자에게 낯선 긴장감을 주었다.
마네의 <발코니>처럼 네 자매는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은 듯한 거리감을 드러내며, 정지된 듯한 모습은 일상이 멈춘 듯한 인상을 준다. 결국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끌어안으며, 초상화라는 장르를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시켰다.
보이트 자매는 하얀 앞치마와 원피스를 입었다. 흰색은 빛의 방향과 강도, 주변의 반사광에 따라 무수히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사전트는 이를 통해 다양한 조명에서 흰색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그의 뛰어난 기량을 드러내는 장치로 설계했다. 사전트는 공들여 칠한 색 위에 마치 별다른 노력 없이 완성된 것처럼 마지막 단계에서 번득이는 붓질을 더했다.
사전트는 이 작품을 ‘아이들의 초상’이라 명명해 1882년 조르주 프티(Georges Petit) 갤러리에 출품했고, 이후 파리 살롱에도 다시 내놓았다. 평론가들은 그의 뛰어난 기교를 인정하면서도, 중심이 비어 있는 파격적 구도에 당혹감을 드러냈다. 어떤 이는 “네 모서리와 공허”라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시각에서는 이 작품을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의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운 본질에 대한 애틋한 성찰로 읽었다.
특히 사전트나 보이트 부부와 가까웠던 작가 헨리 제임스(Henry James)는 이를 “매력적인 아이들이 있는 행복한 놀이 세상”이라고 묘사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19세기 후반, 서양으로 수출하기 위해 아리타에서 제작된 이 화병은 보이트 가문이 대서양을 건너 파리까지 가져온 귀중한 소장품이다. 최소 144년간 대륙을 넘나들며 입은 상처는 접합되고 철사로 고정되었지만, 일본, 미국, 프랑스를 거쳐 드디어 보스턴에 정착했다.
대체로 미술관에서 도자기까지 관심을 가지기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 회화와 조각에 집중하는 편이지만, 이 도자기는 각별했다.
보이트 자매가 아버지를 기리며 1919년 기증한 <에드워드 달리 보이트의 딸들>과 1992년 기증된 도자기는, 이제 그녀들과 나에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기억으로 완성되었다.
비록 메트로폴리탄에서 작품을 먼저 감상하고, 이후 보스턴에서 도자기를 보았지만 유한한 인간을 능가하는 예술의 위대함을 실감하게 되었다.
사전트가 보스턴 공립 도서관에 장식한 벽화 제목처럼 “건축, 회화, 조각은 아테나 여신의 보호 아래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보존된다.”
왕가위의 <해피투게더>에서 이과수 폭포,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카 항, 산텔모 시장으로 향하는 택시에서 마주친 주황 크레인처럼, 작품 속 장소는 배경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나 영화 밖에서 감정과 기억을 불러내는 장치다. 그런 특정 장소를 직접 마주하는 경험은 창작자와 관객이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는 특별한 교차점이다. 관객은 그 장소를 직접 찾음으로써 창작자를 오마주하고, 자기 경험으로 확장시킨다.
보이트 자매의 보스턴처럼, 왕가위의 이과수 폭포처럼, 왕과 사는 남자의 영월처럼, 혹은 BTS 공연을 계기로 찾게 되는 한국의 도시들처럼—예술은 늘 장소와 결합한다. 결국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예술이 던져준 내러티브의 실마리를 따라가며 나만의 서사를 완성하는 과정이다. <끝>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