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에서는 매일같이 대형 M&A, 신약 허가, 임상 데이터가 쏟아진다. 그런데 이 이슈들이 국내 시장 및 관련 업체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짚어주는 보도는 많지 않다. [글로벌 트렌드로 읽는 K-제약바이오]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의 주요 흐름을 추적하고, 그 안에서 국내 시장 및 기업의 좌표를 찾아본다. 편집자 주
방사성의약품 시장이 전례 없는 주목을 받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틈새 시장이었던 이 분야에, 노바티스·일라이 릴리·BMS·아스트라제네카 등 글로벌 빅파마들이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23년 79.6억 달러(약 10조3500억원)에서 2033년 218.2억 달러(약 28조3700억원)로 연평균 10.6% 성장 전망이며, 아시아-태평양 시장은 이를 상회하는 11.4%가 예상된다. 왜 지금일까.
230억 달러 투자, 100억 달러 M&A… 빅파마의 계산법
퍼스펙티브 테라퓨틱스 CEO 티지스 스푸어는 최근 인터뷰에서 “2026년은 방사성의약품의 기념비적인 해”라고 밝혔다. 그간 노바티스의 루타테라(신경내분비종양)·플루빅토(전립선암) 두 품목이 독주했으나, 2026년부터 다양한 동위원소·타겟에 걸친 임상 데이터가 본격 공개되면서 시장 저변이 확대될 것이란 진단이다.
그가 동시에 강조한 것은 ‘제조’다. FDA가 지난해 발행한 다수의 CRL(완전 대응 서한) 중 상당수가 생산 문제에서 비롯됐다. 방사성의약품은 반감기가 짧아 생산과 물류가 품질에 직결된다. CDMO 의존보다 자체 생산 역량 확보가 핵심이라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를 가장 공격적으로 실행에 옮기고 있는 기업이 노바티스다. 2025년 4월 230억 달러(약 29조9000억원)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플로리다 윈터 파크에 3만5000평방피트 규모의 RLT(방사성리간드치료제) 생산시설을 신설했다. 인디애나·뉴저지·캘리포니아에 이은 4번째 거점이며, 텍사스에 5번째도 계획 중이다. 반감기 특성상 생산지와 환자 간 거리가 치료 효과에 직결되므로, 중앙 집중형 대량생산이 아닌 수요지 인근 소규모 시설 분산 배치 전략이다. 현재 FDA 승인 RLT 품목을 보유한 빅파마는 노바티스가 유일하며, 인디애나 캠퍼스에는 핵심 원료인 동위원소 자체 생산시설까지 별도로 구축하고 있다.
차세대 핵심 동위원소 악티늄-225(Ac-225)를 둘러싼 경쟁은 더 치열하다. Ac-225는 암세포를 정밀 파괴하면서 주변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는 알파입자를 방출하는 동위원소로, 기존 루테튬-177 기반 베타 치료 대비 종양 살상력이 월등하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공급이 수요에 턱없이 못 미치는 상황에서, 릴리는 포인트 바이오파마를 14억 달러에 인수한 데 이어 동위원소 기업 아이오네틱스에도 직접 투자했다. BMS는 레이즈바이오를 41억 달러에, 아스트라제네카는 퓨전 파마를 24억 달러에 각각 인수하며 알파 치료제 플랫폼을 확보했다. 업계에서는 루테튬-177·악티늄-225를 넘어 구리-67(Cu-67), 아스타틴-211(At-211) 등 차세대 동위원소로 경쟁이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리하면, 노바티스 230억 달러, 릴리 14억 달러, BMS 41억 달러, 아스트라제네카 24억 달러. 빅파마 4곳이 방사성의약품 분야에 투입한 금액만 합산해도 300억 달러(약 39조원)를 넘는다. 이들의 계산법은 하나로 수렴한다. 방사성의약품은 ‘만들 수 있는 곳’이 곧 ‘시장을 지배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듀켐바이오, CDMO로 글로벌 밸류체인 진입 모색
이 흐름에서 국내 기업 중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곳이 ㈜듀켐바이오(176750)로 꼽힌다. 국내 전역에 GMP 인증 방사성의약품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듀켐바이오는, 기존 진단제 생산 인프라를 기반으로 치료용 방사성의약품 CDMO 사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7년까지 영남대 의료원에 치료용 동위원소 생산설비를 증설하고, 세브란스·강원대 병원에 치료제 생산설비를 추가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CDMO 시설은 2027년·2029년 순차 구축하며 아태 지역 공급 거점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TROP2 신약 기술 개발과 전립선암 치료용 기술이전 계약 검토도 병행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CDMO 사업의 밑바탕이 되는 본업 진단제 실적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듀켐바이오는 암 진단 53.5%, 파킨슨병 55.8%, 알츠하이머 94.3%의 점유율로 국내 진단용 방사성의약품 전 분야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25년에는 매출 385억원, 영업이익 74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매출 8%, 영업이익 47%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알츠하이머 치료제 ‘레켐비’의 국내 공급 개시(2024년 12월)에 따라 동반 진단제 비자밀·뉴라체크 매출이 전년 대비 약 30억원 늘었고, 영업이익은 약 24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당기순이익은 63억원으로 전년(80억원) 대비 표면상 감소했으나, 전년도 이연법인세 28억원 자산 인식이라는 일회성 효과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약 11억원 증가한 수치로, 매출·영업이익·순이익 동반 성장을 기록한 것으로 분석된다.
2026년에도 모멘텀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릴리의 치매 치료제 ‘키순라’의 국내 허가가 예상되면서 동반 진단제 ‘뉴라체크’ 수요가 한 단계 더 확대될 전망이다. 여기에 전립선암 진단제 ‘프로스타시크’, 유방암 진단제 ‘FES’가 본격 매출 궤도에 진입하면서, 3개 신규 적응증 제품이 동시에 실적에 기여하는 최초의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노바티스가 230억 달러를 투입해 분산형 RLT 네트워크를 세우고, 릴리·BMS·아스트라제네카가 수조 원의 M&A로 동위원소 경쟁에 뛰어든 이유는 명확하다. 방사성의약품은 ‘만들 수 있는 곳’이 곧 ‘시장을 지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태 시장이 글로벌 평균을 상회하는 성장률을 보이는 가운데, 듀켐바이오의 CDMO 사업 전개가 진단 시장을 넘어 글로벌 방사성의약품 밸류체인 진입을 위한 교두보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