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 문화칼럼] 하얀 민들레를 닮은 우리 시대의 어머니 ‘임이자’를 만나

[전정희 문화칼럼] 하얀 민들레를 닮은 우리 시대의 어머니 ‘임이자’를 만나

척박한 땅에 뿌리 내린 순백의 인내
희생이라는 이름의 향기, 그 지극한 모성
4월, 하얀 민들레가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
어머니라는 영원한 고향

기사승인 2026-03-24 17:01:22

4월의 잔인함 뒤엔 언제나 눈물겨운 생명력이 피어난다. 담벼락 밑, 보도블록 틈새, 누군가의 발길이 닿지 않는 척박한 땅 어디든 뿌리를 내리는 민들레, 그중에서도 유독 귀하여 눈에 띄지 않는 ‘하얀 민들레’를 볼 때면 나는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린다. 노란 민들레의 화려함 대신, 자극적이지 않은 순백의 빛깔로 세상을 품어온 우리 시대의 어머니, 임이자 선생이다.

전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서양 민들레와 달리, 토종 하얀민들레는 그 생명력이 강인하면서도 결이 곱다. 임이자 라는 이름 석 자 뒤에 붙은 ‘어머니’ 라는 수식어는 바로 이 하얀 민들레의 생성을 닮았다. 그녀의 삶은 화려한 무대 위의 조명을 쫓는 삶이 아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대지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고, 거친 비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묵묵히 뿌리를 내린 세월이었다.

그녀를 만난 날, 4월의 햇살은 그녀의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투명하게 내려 앉았다. 그 주름은 고통의 흔적이 아니라, 한 생애를 다 해 사랑을 밀어 올린 훈장 같았다. 그 훈장의 의미를 묻는 내게 그녀는 수줍게, 그러나 단단한 목소리로 답했다.

“나의 삶은 오직 국민들의 평범한 하루가 무사히 피어나길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었습니다. 내가 견딘 비바람이 누군가에게는 따스한 볕줄기가 되길 원했을 뿐이지요.” 담담하게 내뱉는 그녀의 목소리엔 수십 년 세월의 풍파가 녹아 있었지만, 눈빛만은 갓 피어난 민들레 꽃잎처럼 맑았다.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이 그러했듯, 임이자 선생의 삶 또한 ‘나’를 지우고 ‘우리’를 채우는 과정이었다. 하얀 민들레가 약재로 쓰여 자신의 몸을 다 내어주듯, 그녀 또한 자신의 꿈과 청춘을 국민들의 미래와 맞바꿨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희생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저 ‘어머니의 당연한 몫’ 이라며 옅은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녀의 손등은 거칠었다. 거친 현장의 목소리를 갈아엎어 희망의 터를 일구고, 국민의 고단한 삶을 구석구석 살피며 씻어내고, 밤새 아픈 민생의 머리맡을 지키며 온기를 전하던 그 손은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숭고한 책임’의 상징이다. 문학적 감성으로 바라본 그녀의 손은 단순히 노회한 정치인의 손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민이라는 생명의 씨앗을 무사히 틔우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거름으로 내어주는 민들레의 숙명 같은 헌신이었다.

오늘날의 세상은 너무도 빠르고 자극적이다.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려 애쓰고, 더 높은 곳을 향해 치닫는다. 그런 소란스러운 풍경 속에서 임이자 선생이 보여주는 ‘하얀 민들레의 삶’은 우리에게 멈춰 서서 돌아보라 말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나 세상을 정화하는 것은 화려한 장미가 아니라,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민들레의 진심 이라는 것을.

그녀와의 대화는 마치 오래된 서정시 한편을 읽는 듯했다. “꽃은 져도 뿌리는 남잖아요. 국민들이 행복하고, 잘살고 있으면 나는 그걸로 산거예요.” 이 한마디는 현대 문학이 담아내지 못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서사였다. 그녀는 우리 시대의 텅빈 가슴을 채워주는 살아있는 문장이며, 메마른 정서를 적시는 단비 같은 존재였다.

임이자 선생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길가에 핀 꽃 한 송이가 예사롭지 않다. 4월의 바람에 흔들리는 저 하얀 꽃잎은 누군가의 눈물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하다.

소설가로서 나는 그녀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엮는다면 제목을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하얀 민들레’라 적으면 충분할테니까.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결코 순백의 고결함을 잃지 않았던 그녀, 임이자. 그녀가 우리 시대에 건네는 위로는 따뜻한 밥 한 그릇 같은 온기이며, 세상을 버티게 하는 보이지 않는 뿌리다.

이 4월, 하얀 민들레를 닮은 그녀의 삶이 고단한 우리 모두에게 따스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 어머니, 당신이 피워낸 그 하얀 꽃길을 이제 우리가 사랑으로 채워갈 차례다.

그를 떠올리면 늘 내 소설 속 ’하얀 민들레‘가 겹쳐 보입니다. 민들레는 화려한 장미처럼 누군가 가꾸어주길 기다리지 않습니다. 척박한 보도블록 틈바구니에서도 기어이 환한 얼굴을 내밀고, 바람이 불면, 제 몸을 쪼개어 멀리 홀씨를 보냅니다. 임이자의 삶 또한 그러했습니다. 노동의 현장에서 투박한 손마디로 삶을 일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마주해야 했던 수많은 편견의 벽을 오직 진심과 실력으로 넘어온 이 시대의 ‘개척자’ 였습니다.

최근 그가 겪어낸 인고의 시간은 소설속 주인공이 겪는 ‘절정의 갈등’과도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소설에서 진정한 주인공은 시련 앞에서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시련을 양분 삼아 더 깊은 서사를 완성해 나가지요. 꽃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법이 없으며, 가장 깊은 뿌리는 가장 추운 겨울을 견딘 후에야 비로소 대지를 뚫고 나오는 법이니까요.

임이자 라는 이름 뒤에 붙는 수많은 수식어보다 소중한 것은, 그가 가진 ‘어머니의 마음’ 입니다. 자식의 아픔을 제 몸의 통증으로 느끼는 어머니처럼, 그는 늘 낮은 곳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왔습니다. 이제 나는 그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모든 여성이 용기를 얻을수 있는 따뜻한 길잡이가 되어주길 소망합니다.

하얀 민들레 홀씨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 척박한 땅 어디에서도 다시 꽃을 피우듯, 그의 진심 어린 행보가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수 있는 ‘희망’의 동의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4월의 대지는 이제 막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슬픔은 봄바람에 씻어 보내고, 다시 그 당당한 걸음으로 세상 앞에 서십시오. 당신의 식지 않는 열정이 우리 사회를 더 따뜻하게 적실 그날을, 소설가 전정희가 묵호댁의 마음으로 대한민국의 한 여성으로서 깊이 응원하겠습니다.

글=소설가 전정희 

(작가 전정희는...)
소설 ‘묵호댁’, ‘하얀민들레’, ‘두메꽃’, ‘가시나무꽃이 필 때’, ‘복수초’ 등을 통해 우리 이웃의 강인한 생명력과 서정적 서사를 그려온 소설가다. 현재 전국 지자체 홍보대사와 방송인으로 활동하며, 팔도강산 곳곳에 숨겨진 보석 같은 ‘사람 향기’를 발굴해 따뜻한 문장으로 전하고 있다.

전인수 기자
penjer@kukinews.com
전인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