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신 신약’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건강보험 급여 체계도 시험대에 올랐다. 고가 의약품이 잇따라 등장하는 가운데 환자 치료 기회를 넓혀야 한다는 요구와 공적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 충돌하고 있다. 3편에 걸쳐 초고가 신약을 둘러싼 급여 평가 구조와 제도적 쟁점을 분석하고, 환자 접근성과 건강보험 재정의 균형점을 찾아본다. [편집자주] |
혁신 신약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한국의 경제성평가 제도는 여전히 ‘보수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낮은 약가와 엄격한 기준, 장기간의 급여 등재 절차가 맞물리면서 글로벌 제약사가 신약의 한국 출시를 늦추거나 다른 시장을 우선 고려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고 본다. 고가 신약 확대에 대비한 성과 평가 기반 보장 체계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약 개발이 빨라지면서 생존율 향상은 물론 삶의 질 개선, 난치성 질환 치료 가능성을 높이는 혁신 치료제가 계속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실제 치료제가 환자에게 닿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데다 까다로운 규제가 신약 허가·급여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글로벌 제약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환자의 신약 치료 접근성보다는 건강보험 재정이 지속 가능한지에 더 초점을 맞추고 가격을 인하하는 방법을 찾는다”며 “경제성평가를 실행 중인 타 국가에 비해서도 신약이 허가 후 건강보험 등재까지 걸리는 기간이 길고, 건강보험 적용률이 낮은 편에 속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약 등재에는 비교 약제의 가격이 중요한데 출시된 지 10년이 넘은 치료제, 대증요법 등이 가격이 낮다는 이유로 비교 대상이 되고 있다”면서 “정부 정책으로 가격 수준이 점점 낮아지다 보니 혁신 신약을 정부가 인정하는 비용효과 수치에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부연했다.
정부에서 요구하는 자료도 많아 자료 보완 횟수가 과도하거나 기준이 때때로 달라지면서 제약사들은 신약 가격 인하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경제성평가 과정에서 제약회사에 10회 이상 반복해 자료 보완을 요청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면서 “관련 위원회의 구체적인 논의 근거도 공개되지 않아 회사로선 합리적인 대응과 자료 보완에서 한계를 느끼고 있다”로 토로했다.
희귀질환 치료제 급여 최장 ‘3년10개월’ 소요
정부도 업계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등재 기간 단축을 추진하고 있다. 의약품 허가부터 급여 등재까지의 기간은 현재 330일에서 150일로 180일 줄인다.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사후평가제도’ 시범사업을 통해선 급여 적정성 평가와 협상 간소화로 등재 기간을 현재 240일에서 100일로 단축한다. 또 ‘ICER(Incremental Cost-Effectiveness Ratio, 점증적 비용-효과비)’ 임계값을 적정 수준으로 상향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신약 개발 생태계를 조성하고, 희귀질환 치료 접근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환자와 업계는 혁신 신약 급여 결정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비판해 왔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환단연)가 최근 5년(2021~2025년)간 건강보험에 등재된 항암제 32개와 4년간(2022~2025년) 등재된 희귀질환 치료제 20개의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이후 건강보험 등재까지 걸린 기간을 분석한 결과, 항암제는 급여까지 평균 1년10개월, 희귀질환 치료제는 2년11개월에서 길게는 3년10개월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신약 건강보험 등재는 식약처 허가 이후 제약사의 등재 신청을 시작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급여 적정성 평가,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의 약가 협상, 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심의 및 고시 절차를 거쳐 최종 건강보험 적용 여부가 결정된다.
심평원의 급여 적정성 평가는 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와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를 통해 신약의 임상적 유용성과 급여 기준, 비용 효과성 등을 검토한다. 이들 처리 기간은 120일(최대 150일)이며, 이후 건보공단과 제약사 간 약가 협상의 처리 기간은 60일, 건정심 심의 및 복지부 고시 처리 기간은 30일이다.
그러나 환단연의 급여 등재 기간 분석 결과는 정부의 처리 기간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항암제의 경우 식약처 허가 이후 건강보험 등재 신청까지 평균 191일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등재 신청부터 암질심 통과까지는 평균 약 156일, 암질심부터 약평위 통과까지는 평균 약 201일이 걸리는 것으로 집계됐다.
“안전성·효능 중요하지만…합리적 급여체계 필요”
전문가들은 신약의 안전성과 효능이 명확히 평가받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신속 사용이 필요한 의약품을 위한 합리적인 급여 결정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권혜영 목원대 의생명보건학부 교수는 “기존의 치료법이 없어서 안전성과 효능이 불충분하더라도 사용해야 하는 경우라면 신속 사용이 허용돼야 한다”며 “이런 경우 의약품을 바로 급여화 하기 보다는 별도기금을 통해 급여를 보장해주고, 일정 기간 동안 근거가 누적되면 해당 의약품의 임상적 효과와 그에 부합하는 비용효과성을 검토한 뒤 급여를 등재하는 ‘과도기적 보장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성평가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한 사후관리 제도의 활용도 중요하다. 김정은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은 “현재 운영되고 있는 성과 기반 위험분담제와 같은 환급 방식이나 사후 임상자료 수집 등을 조건으로 하는 조건부 급여 방식, 등재 이후 실제 진료 환경에서 생성되는 RWD(Real World Data)를 활용한 추가 근거 생성 등 다각화된 사후관리 제도가 함께 작동된다면 불확실성을 관리하면서도 환자의 신약 접근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경제성평가 자료를 제출하는 제약사와 해당 자료를 평가하는 정부 모두 자료 평가 과정에서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김 전문위원은 “경제성평가는 본질적으로 미래의 건강 성과와 비용을 추정하는 분석이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불확실성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제약사는 임상 근거와 자료 분석 방법의 신뢰성을 높여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평가와 수용의 주체인 정부는 다양한 근거와 분석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를 유연하게 해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