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SK하이닉스의 미국 신주 발행에 기반한 미국예탁증서(ADR) 상장 추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잉여현금흐름이 넘치는 상황에서 기존 주주의 지분을 희석시키는 신주 발행 방식은 개정 상법이 요구하는 주주보호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포럼은 25일 논평에서 “ADR 발행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잉여현금흐름이 풍부한데도 기존주주 입장에서 지분이 희석되는 신주 발행 방식은 반대한다”고 밝혔다. ADR은 해외 투자자가 자국 증시에서 외국 기업 주식을 간편하게 사고팔 수 있도록 한 예탁증권이다. 즉, 한국(본국)에서 발행된 SK하이닉스 주식을 미국 은행(예탁기관)이 대신 맡아두고, 그 주식을 기초로 미국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영수증 형태의 증권을 새로 찍어내는 구조다.
SK하이닉스가 미국 ADR 발행 주관사 선정을 위해 외국계 증권사를 대상으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신주 발행을 전제로 한 ADR 상장이 개정 상법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포럼은 SK하이닉스의 재무여력을 근거로 “추가 자금조달 명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말 기준 약 35조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래에셋증권 추정에 따르면 2026~2028년 동안 189조원 규모의 설비투자와 수십조원의 연구·개발(R&D) 투자를 집행하고도 672조원에 달하는 잉여현금흐름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포럼은 “ADR 상장 규모가 10조~15조원 수준으로 거론되는데 이 같은 재무여건에서 왜 굳이 신주 발행을 통해 신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지 설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정 상법과의 정합성도 핵심 쟁점으로 제기했다. 개정 상법은 이사회가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만큼, 이사들은 신주 발행과 같은 중대한 결정을 할 때 보유 현금, 향후 잉여현금흐름, 차입 등 가능한 모든 대안을 검토해 주주 비례이익이 가장 극대화되는 방안을 선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포럼은 “이사들이 주주충실의무에 따라 합리적인 대안 비교를 거쳤는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 방안의 장단점과 최종 선택 이유를 투명하게 공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ADR 상장 규모와 유동성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포럼은 “현재 거론되는 10조~15조원 규모 ADR로는 미국 시장에서 의미 있는 유동성과 존재감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SK하이닉스 전체 발행주식수의 10~15%를 취득해 일부는 소각하고, 나머지를 미국에 상장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TSMC를 비교 사례로 들었다. TSMC 시가총액은 약 2630조원으로 SK하이닉스의 4배 수준이지만 발행주식의 80%는 대만, 20%는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TSM ADR로 상장돼 있다. TSM ADR 시가총액만 500조원대에 달하고 일평균 거래대금도 7조원을 웃돌아 국내에서 활발히 거래되는 SK하이닉스 일평균 거래대금 4조원을 크게 상회한다는 것. 그러면서 포럼은 “미국에서 ETF 편입과 유의미한 유동성을 확보하려면 ADR 상장 규모가 최소 200억~300억달러는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밸류에이션을 둘러싼 시장의 기대에 대해서도 “대단히 나이브한 생각”이라며 비판했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ADR 발행 시 SK하이닉스가 미국의 마이크론과 유사한 밸류에이션을 적용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지만, ADR 상장이 곧바로 주가 밸류에이션 레벨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포럼은 “거버넌스 개선이 전제돼야 주식의 재평가가 가능하다”며 “ADR만 상장해 놓고 지배구조 리스크를 방치한다면 글로벌 자금이 적극적으로 유입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포럼은 “지금 SK하이닉스 경영진과 이사회가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ADR을 명분으로 한 신주 발행이 아니라 거버넌스 리스크를 줄여 주가 밸류에이션을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명확한 자본배치(capital allocation) 원칙 공개 △교수·로펌(김앤장) 중심으로 구성된 이사회에 자본시장·거버넌스 전문가를 보강해 독립성 강화 △미국 AI 법인 관련 우려 해소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포럼은 “이사회를 그룹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시키고, 모든 주요 의사결정을 개정 상법이 요구하는 기준, 즉 ‘총주주의 이익 보호’와 ‘전체 주주 이익의 공평한 대우’에 맞춰 투명하게 집행할 때 비로소 SK하이닉스의 진정한 밸류에이션 리레이팅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