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조 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법정 공방과 행정 강행이 충돌하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이 자사의 설계 노하우 유출을 막기 위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며 선공에 나섰지만, 방위사업청은 이를 사실상 묵살하고 사업 일정을 강행하기로 했다.26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방사청은 이날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위한 제안요청서(RFP)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에 배부한다.
이는 지난 24일 HD현대중공업이 “서울중앙지법에 자사 영업기밀이 담긴 기본설계 자료를 경쟁사(한화오션)에 공개하지 말라”며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지 이틀 만에 나온 당국 공식 대응이다.
사건의 발단은 KDDX의 ‘기본설계’ 결과물을 상세설계 입찰 참여자 모두에게 공개하라는 방사청의 지침이다.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를 수행하며 투입한 독자적인 함정 건조 공법과 가격 전략 등 12개 핵심 항목이 포함된 RFP를 한화오션에 넘기는 것은 ‘기업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불공정 행위’라는 입장이다.
특히 이번 수주전은 HD현대중공업에 적용되던 ‘-1.8점 보안 감점’이 지난해 11월부로 종료된 후 처음으로 열리는 대형 함정 사업이다.
감점 족쇄에서 풀려난 HD현대중공업 입장에서는 기술력만으로 정면 승부를 벌여야 하는 시점에 자신들이 정립한 설계 데이터와 가격 전략까지 한화오션에 넘겨줄 경우, 상세설계 수주전에서 역전할 기회조차 사라지게 된다.
한화오션 역시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다. 기본설계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자료 확보마저 제한될 경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사청이 배부하는 RFP는 필요한 전력 기준을 공개하고 사업자들에게 어떻게 사업을 수행할지 묻는 질문지로, 기본설계 결과물도 참고자료도 첨부된다.
방사청은 당초 수의계약 관례를 깨고 ‘경쟁 입찰’로 선회하며 공정성을 내세웠지만, 정작 자료 공유 범위를 두고 양사의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갈리면서 사업은 2년 넘게 표류 중이다.
방사청은 일단 RFP를 배부하되, 향후 법원에서 가처분이 인용되면 자료를 회수하는 등 후속 조치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법원이 HD현대중공업의 손을 들어줄 경우, 제안서 접수와 업체 선정 일정이 줄줄이 밀리며 향후 KDDX 사업은 또다시 표류할 가능성이 커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