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쌀’로 불리는 석유화학 기초 원료 나프타(납사)의 중동발 수급 차질이 국내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정부가 미국 측과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에 대한 제재를 해소하며 수입 활로를 열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러시아산을 수입해 왔던 만큼 거래 재개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면서도, 급등한 가격에 따른 기업 부담을 고려할 때 정부 지원도 동반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26일 통상당국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중동 전쟁 대응 본부 일일 브리핑’을 통해 “러시아산 원유 및 나프타 수입 시 산업계가 맞닥뜨릴 애로사항과 관련해 미국 재무부와 소통해 확인받았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양기욱 산업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달러화가 아닌 통화로 대금 결제를 할 수 있는지, 수입 시 미국으로부터 2차 제재를 받진 않는지 등 업계 우려를 접수받아 미 측에 문의했고, 미국으로부터 루블화·위안화 등으로 결제가 가능하며 2차 제재도 적용하지 않겠다는 답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간 미국이 러시아산 거래를 한시적으로 해제했음에도 금융 결제 등 2차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이에 대한 확답을 받은 셈이다.
다만 양 실장은 “원유의 경우 국내 정유 설비가 중동산 원유에 맞춰져 있어 현실적으로 당장 대량 수입하긴 어렵고, 나프타의 경우 상대적으로 원유보다 도입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짚었다.
나프타는 에틸렌, 프로필렌, 합성수지 등을 생산해 조선·자동차·건설·전자 등 전방산업에 영향을 주는 기초이자 핵심 원료다. 국내에 공급되는 나프타의 절반은 수입산이고 나머지는 국내에서 원유를 정제해 생산 중인데, 수입산의 절반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왔고 국내 도입 원유의 약 70%가 중동산이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와 동시에 국내 석화업계 설비 감축 여파까지 겹치면서 국내 나프타 재고 수준은 약 2주 분량으로, 4월 말쯤에는 셧다운 위기가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나프타가 원료인 종량제봉투에 대한 품귀 및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정부는 종량제봉투의 경우 전국 평균 3개월치 여유분을 보유하고 있고 국내 재활용 업체의 재생원료로 충분히 생산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선 한 달 내에 물량을 수급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선택지가 확장됐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는 반응이다.
김태황 명지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기업별 재고에 차이가 있고 가변성도 높아 전체적인 조달 필요물량은 정확히 산정이 어렵다”면서도 “우리가 러-우 전쟁 이전에 러시아로부터 다량의 나프타를 수입했었기 때문에 거래 자체는 원활히 재개할 수 있어 이론적으론 4월 말 내에 충분히 조달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이어 “러시아가 최근 금을 팔아 2조원 이상을 조달하는 등 현재 자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계약에도 적극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러-우 전쟁 이전까지 러시아로부터 가장 많은 나프타를 수입(약 23~25%)해 왔다.
다만 현실적인 제약도 적지 않다. 현재 제재 완화 대상은 이미 선적된 물량에 한정돼 품질과 물량을 사전에 확인하기 어렵고, 계약부터 결제까지 한 달 내 마무리해야 하는 점도 부담이다.
가격 역시 변수다. 나프타 가격은 이란 사태 이전인 지난달 27일 톤(t)당 633달러에서 이달 24일 1089달러로 약 72% 급등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부 기업에서 러시아산 나프타 도입 관련 경제성과 물류 여건 등을 검토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선박·보험 등 추가적인 문제도 뒤따른다”며 “계약의 세부적인 측면에서 정부의 조율과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국내 기업의 나프타 수출 제한 조치를 추진하는 한편, 대체 수입에 따른 추가 비용을 전쟁 추경 예산에 포함해 기업을 지원할 방침이다. 또,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 관련 업계가 요청할 경우 거래 검증 등 지원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김태황 교수는 “한 달 정도라도 소량이나마 단기적으로 우리 업계가 버틸 수 있는 돌파구를 우선 마련하고, 그 이후에 이란 사태 진행 상황을 살피면서 이를 고려한 계약 형태를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