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드는 시대에서 잘 파는 시대로…K-패션, 이제는 ‘유통 싸움’

잘 만드는 시대에서 잘 파는 시대로…K-패션, 이제는 ‘유통 싸움’

커지는 시장·줄어드는 수출…플랫폼 편중 속 성장 경로 막혀
“이젠 노출이 아니라 거래”…수주·판매 결합 모델 부상

기사승인 2026-03-27 06:00:11
26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패션코드 2026 FW 박람회가 현장. 심하연 기자

K-패션 산업이 변곡점을 맞고 있다. 수십 년간 ‘디자이너 발굴’에 집중해 온 패션 행사가 ‘수주’와 ‘해외 유통’ 중심으로 무게추를 옮기고 있다. 내수 시장은 둔화되고 수출은 장기 하락세를 이어가면서, 기존 성장 방식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패션 시장은 외형상 성장세를 이어왔다. 2023년 기준 시장 규모는 48조4167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그러나 수출은 정반대 흐름이다. 같은 해 섬유·의류 수출액은 전년 대비 11.3% 감소한 109억달러에 그쳤다. 

2014년 이후 이어진 감소세는 최근 들어 더욱 가팔라졌다. 세계 시장 점유율도 2010년 2.1%에서 2023년 1.0%로 축소됐다. 

내수 역시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상반기 의류 소비는 전년 대비 -1.3%로 2년 연속 감소했고, 패션기업 매출 증가율도 2023년 4.5%에서 2024년 1.0%로 급격히 낮아졌다. 상장사 실적도 예외는 아니다. 2025년 상반기 섬유패션 상장사 77개사 중 77.9%가 영업이익 감소를 겪었으며, 전체 영업이익은 12.0% 줄었다. 반면 상위 10% 기업이 전체 이익의 74.8%를 차지하며 양극화는 더욱 심화됐다.

성장 둔화 속 구조적 위기…생존율 30%의 현실 

이러한 구조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생존 문제로 이어진다. 업계에서는 패션 브랜드의 5년 생존율이 30% 내외에 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발굴 이후 안정적인 유통과 수익 구조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시장에서 지속하기 어려운 구조임을 보여주는 지표다. 

한국패션산업협회 관계자는 “중소 디자이너 브랜드는 자체 유통망이나 해외 네트워크가 부족해 플랫폼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며 “가격 경쟁과 수익성 압박이 동시에 발생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내수 성장기 동안 디자이너 브랜드의 주요 유통 채널은 플랫폼이었다. 플랫폼은 브랜드에 빠른 시장 진입과 매출 확보 기회를 제공하며 성장 기반을 형성했다. 국내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성장세를 이어가며 올해도 거래액 4조원 이상, 연매출 1조원 규모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의류의 온라인 구매 비중은 약 30% 수준으로, 신발·가방 등 일부 품목은 40%에 육박하는 등 패션 소비에서 온라인 채널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 역시 플랫폼을 중심으로 유통 구조를 형성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 

한 일본인 바이어가 패션코드 2026 FW 수주 박람회에서 국내 브랜드를 둘러보고 있다. 심하연 기자 

플랫폼의 명암…빠른 성장 vs 수익성 한계

다만 플랫폼 중심 구조는 기회와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다. 입점 브랜드 입장에서는 비교적 빠르게 매출을 확보하고 소비자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이를 기반으로 자체 채널이나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반면 수수료와 할인 경쟁 구조 속에서 수익성은 제한되고, 해외 유통으로의 확장은 별도의 경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한계도 존재한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관계자는 “플랫폼은 초기 브랜드가 시장에 안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도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결국 자체 유통이나 해외 판로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플랫폼은 내수 판매에는 강점이 있지만 해외 유통망을 연결해주는 기능은 제한적”이라며 “글로벌 시장에 나가려면 수주 채널이나 에이전시 확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플랫폼이 빠른 매출 확보에 유리한 구조라면, 수주는 해외 유통망과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구분된다. 업계에서는 두 채널을 병행하지 않을 경우 브랜드 성장이 일정 단계에서 정체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여주기’에서 ‘거래’로…패션코드서 확인된 변화

최근 열린 ‘패션코드 2026 F/W’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반영됐다. 행사 운영은 전시 중심에서 벗어나 바이어 매칭과 수주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일부 조정됐다.

수주 박람회에서는 사전 매칭 시스템, 통역 및 에이전트 지원, 해외 진출 컨설팅 등 실거래 지원 기능이 강화됐다. 일본·태국·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바이어를 중심으로 실제 구매 가능성이 높은 유통 파트너를 유치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현장에서도 변화는 감지됐다. 런웨이와 전시 공간에서 바이어와 브랜드 간 상담이 활발히 이뤄졌고, 일부 부스에서는 납품 조건과 물량을 논의하는 등 거래를 전제로 한 협의가 진행됐다. 동시에 코드마켓을 확대 운영하며 소비자 판매를 병행하는 등 B2B와 B2C를 결합한 구조도 시도됐다.

패션계는 결국 ‘연결 구조’ 구축이 핵심이라고 본다. 한 패션산업 연구자는 “브랜드 노출과 판매, 수출이 각각 분리된 구조에서는 산업으로 성장하기 어렵다”며 “유통·수주·생산이 연결된 체계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날 패션코드 현장을 방문한 일본인 바이어는 “K-패션은 디자인 경쟁력은 충분하지만 공급 안정성과 가격 조건, 지속적인 컬렉션 운영 측면에서는 보완이 필요하다”며 “장기적인 거래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6년 K-섬유패션 산업에 230억원을 투입해 글로벌 진출과 제조 경쟁력 강화를 지원할 계획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정책과 행사 지원이 실질 수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구조적 연결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패션 브랜드 관계자는 “단순히 브랜드를 노출시키는 것을 넘어, 유통과 수출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패션위크, 수주 행사, 플랫폼이 각각 따로 작동하는 현재 구조를 연결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보여주는 패션’에서 ‘거래되는 패션’으로의 변화가 시작된 만큼, 이를 지속 가능한 구조로 만드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하연 기자
sim@kukinews.com
심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