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운전’ 규제 논란…정신과의사회 “환자 낙인·치료 중단 우려”

‘약물운전’ 규제 논란…정신과의사회 “환자 낙인·치료 중단 우려”

기사승인 2026-03-30 15:20:28
픽사베이.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가 오는 4월 시행되는 약물운전 관련 도로교통법 개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행 논의와 홍보 방식이 단순화될 경우 환자 치료권 위축과 안전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사회는 30일 입장문을 통해 약물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어려운 상태에서의 운전을 예방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의학적 검토 없이 ‘운전 금지 약물’ 형태로 전달되는 방식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약사회가 배포한 운전 영향 약물 안내와 관련해 표현과 전달 방식에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동일 성분이라도 환자의 연령, 체질, 복용 기간과 용량, 병용 약물, 증상 안정 여부 등에 따라 운전 능력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의사회는 이를 일률적인 금지 목록처럼 제시할 경우 “정신과 약을 복용하면 운전하면 안 된다”는 식의 과도한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사회는 이 같은 방식이 환자 개인차를 반영하지 못하고, 정신과 치료 환자에 대한 낙인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생업상 운전이 필요한 환자가 치료 중단을 선택하는 사례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부연했다.

의사회는 치료 중단이 오히려 운전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불안장애, 우울장애, 불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조현병, 양극성장애 등은 적절한 치료를 통해 인지기능과 주의집중, 수면 상태가 개선되는 경우가 많지만, 치료를 중단하면 오히려 집중력 저하와 충동성 증가 등으로 사고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공공안전을 위해 도입된 제도가 치료 중단을 유발할 경우, 약물 복용 자체보다 질환 악화가 더 큰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의사회는 약물운전 문제를 법적 규제 중심으로 접근하기보다 의학적 기준을 기반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청이 단속과 홍보를 확대하기 전에 정신건강의학과, 신경과, 내과, 약리학 등 관련 전문가 단체와 충분한 사전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함께 정신과 약물의 운전 영향에 대한 전문가 가이드라인 마련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환자에게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의료진의 진료 부담을 줄이며, 정책 설계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의사회는 “약물운전 예방에는 협조하겠지만 ‘약을 먹으면 위험하다’는 식의 단순한 공포 조성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신과 약물은 금지 목록이 아니라 환자 상태에 따른 의학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이찬종 기자
hustlelee@kukinew.com
이찬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