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talk] 공연장도 전문점 시대?

[Ki-Z talk] 공연장도 전문점 시대?

기사승인 2011-10-30 13:00:01
<용가리의 문화적 노가리>

[쿠키 문화] 오늘은 뭘 먹지?
글쎄요. 뭐, 아무거나....
맨날 그게 그건데, 뭐 쌈빡한 거 없을까?

결국, 그 중 제일 높은 사람에 의해 ‘아무거나’로 결정되고 마는 우리네 직장의 짧은 점심 메뉴 토크다. 이럴 때 누군가가 “어느 집 무슨 메뉴가 짱이더라”고 귀띰만 해도 백프로 그쪽으로 쏠린다.

공연 한편 때릴래?
그럴까? 뭘 보지?
글쎄....뭐 재밌는 거 없을까?

보통의 친구나 연인이라면 나눌법한 공연메뉴 토크이다. 이럴 때 누군가가 “어느 극장의 무엇이 ‘재밌다더라’ 한다면 200% 그쪽으로 달려간다.

아무거나 고른 음식이 맛이 별로였다 해도 그다지 크게 후회할 일은 아니다. 담에 그 집 안가면 되고, 하루 세끼 먹는데 뭐, 한 두 끼쯤 망친다 한들 대순가.

공연도 매일 보는 것이라면 뭐,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없는 시간을 내서, 그것도 녹녹치 않은 티켓 가격에, 자주 볼 수 없는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식가라면 당연히 이런 저런 ‘맛 집’ 정보를 찾고, 가본 사람에게 묻기도 하면서 꼼꼼하게 체크를 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오만가지 메뉴를 다 취급하는 곳 보다는 한 가지 메뉴만 잘 하는 전문식당을 찾는다. 웬만한 쇼핑 애호가나 주부들도 마찬가지다. 브랜드, 가격, 디자인, 자신의 취향에 맞춰서 고르고 또 고른다.

이제 우리에게도 ‘공연미식가’들에게 백화점이 아닌 전문매장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세계적이면서도 새로운 취향의 LG아트센터, 대중적이면서도 작품성 있는 브랜드의 명동예술극장,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레시피가 있는 남산예술센터, 전통적인 재료를 현대 감성에 맞게 해석하겠다는 대학로예술극장 등이 그것들이다. 이미 전에도 몇몇 전문매장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망한 연출가들이 모여 새로운 시도를 해온 혜화동 1번지도 있고, 넓게 본다면 전통예술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온 국립극장예술단체도 그 축에 속하지 않는다 할 수 없다.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확장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일반 백화점식 공연장에서도 선택만 신중히 한다면 입맛 좋은 공연을 건져 올리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공연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애쓰지 않는 예술가들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입맛을 전문가들의 눈을 빌어 평가를 받고자 하는 공연장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세종문화회관의 예술단체들이나 예술의전당에 상주하는 국립예술단체들이 이를 선도하고 있다. 이미 세계적 반열에 가까이 다가간 정명훈의 서울시향도 있지 않은가. 이들은 대개 독특하고 새로운 향보다는 묵직하고 그윽한 맛을 지켜가려는 스타일이다.

이제 바랄 것은 뭘 먹을까, 뭘 볼까 식의 애매한 질문을 던지기 전에 꼼꼼하게 정보를 먼저 찾아보는 쇼핑 애호가나 미식가와 같은 공연애호가, 공연미식가들이 나날이 늘어나는 일이다.


이용관 (한국예술경영연구소장/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

Ki-Z는 쿠키뉴스에서 한 주간 연예/문화 이슈를 정리하는 주말 웹진으로 Kuki-Zoom의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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