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씨름 영화에 권율이?’라고 생각했다. 팔씨름 시합 장면엔 덩치 큰 남자 배우들이 어울린다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등장인물 설명을 읽어보고 납득이 갔다. 배우 권율은 마동석을 보조하는 스포츠 에이전트 역할이었다. 실제 영화에서도 권율은 한없이 가볍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최근 서울 팔판길 한 카페에서 만난 권율은 영화 ‘챔피언’이 다루는 팔씨름의 매력부터 소개했다. 생소한 소재가 마음에 들었고, 자신이 알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기술을 보고 놀랐다는 얘기였다.
“일단 팔씨름이라는 스포츠에 대한 신선함과 생소함이 컸어요. 대체 어떤 스포츠일까 궁금했죠. 저도 TV에서 팔씨름 랭커를 본 게 다였어요. 저런 분야도 있구나 싶었는데 영화를 하면서 자세하게 알게 됐어요. 선수들이 얼마나 힘들게 훈련하고 준비하는지 보니까 이것도 스포츠의 하나구나 싶었죠. 자료를 찾아보다가 작은 여자 분이 덩치가 두 배정도 되는 남자를 팔씨름 기술로 이기시더라고요. 팔씨름을 단순한 힘겨루기 정도로 많이 생각하시는데 저도 그 영상을 보고 굉장히 놀랐어요.”
권율이 ‘챔피언’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팔씨름 외에 또 있다. 바로 진기라는 가벼운 캐릭터다. 날아다닌다고 표현할 정도로 가벼운 인물이지만 그 뒤에 숨겨진 진지한 모습도 있다. 그렇게 큰 진기의 감정 진폭에 권율의 마음도 흔들렸다.
“진기의 날아다니는 가벼움이 굉장히 재밌게 느껴졌어요. 그와 동시에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서 숨겨진 단면이 드러나는 캐릭터죠. 영화에서 감정 진폭이 가장 크게 흔들리는 인물이라는 점이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했어요. 연기하면서 진기의 허세를 많이 보여주려고 했어요.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하잖아요. 갖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겉으로는 ‘차 팔았어. 대중교통이 편해. 가자’라고 과장되게 허풍기를 표현하려고 했죠. 그래야 나중에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려질 때 캐릭터가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권율은 시사회에서 자신의 연기를 보며 만족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출연한 SBS ‘귓속말’을 다시 찾아보기도 했다. 버릴 것은 버렸어야 한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SBS 연기대상’에서 우수연기상을 받고 ‘귓속말’을 지난 1월에 보게 됐어요. 우연히 영상 클립을 보다가 제가 연기한 것을 찾아보게 됐고 ‘귓속말’까지 본 거죠. ‘귓속말’에서 제가 악역이라서 몰아치는 모습을 다시 보면서 ‘내가 버릴 것들은 버렸으면 어땠을까’ 싶었어요. 그래야 내가 한번 소리치는 게 더 무섭게 느껴졌겠구나 생각했죠. 저는 시속 150~160㎞의 빠른 직구만 던지려고 했더라고요. 가끔씩 90㎞ 커브를 던졌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당시에는 느린공을 던지면 홈런 맞지 않을까, 패전투수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는지 제가 온전히 작전지시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요즘에는 마음을 더 많이 열어두고 연기하려고 해요.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권율은 자신의 작품 선택 기준을 털어놨다. 작품의 완성도와 캐릭터도 있지만, 결국엔 자신에게 가장 큰 의미를 주는 작품을 고르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배우 권율이 성장하고 도전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였다.
“배우로서는 작품 완성도나 캐릭터의 매력, 시나리오의 매력 등 저에게 가장 큰 의미를 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게 돼요. 진기라는 캐릭터도 2시간 안에 드라마도 있고, 캐릭터의 진폭을 크게 보여줄 수 있잖아요. 팔씨름이란 신선한 스포츠와 어떻게 접목될지도 궁금했고요. 흥행은 진짜로 가늠하기 힘든 것 같아요. 제가 연기자로서 성장하고 흥미롭고 도전할 수 있는 작품을 고르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