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혼자 사는 사람들’을 긍정하는 섬세한 위로

[쿡리뷰] ‘혼자 사는 사람들’을 긍정하는 섬세한 위로

기사승인 2021-05-13 07:00:03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진아(공승연)는 근무 중에도, 밥을 먹을 때도, 퇴근길에도 귀에서 이어폰을 빼지 않는다. 집에 들어가 문을 닫는 순간부터 숨통이 트인 진아는 홀로 TV를 본다. 이웃집 남자가 거는 대화나 아빠의 전화, 신입 사원 교육 등 곳곳에서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상황을 모두 피하려 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늘 혼자가 편한 진아의 고요한 일상에 이는 파문을 그린 영화다.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는 진아는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고 혼자 일하고 혼자 밥을 먹는다. 스스로 외부 세계와 소통을 차단한 진아도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만남을 겪는다. 신입 사원 수진(정다은)을 교육하고, 아빠를 만나고, 이웃집 남자가 사고를 당하는 등 진아를 둘러싼 일들이 조금씩 그를 변화시킨다.

혼자 사는 진아를 그린 영화지만, 제목은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다. 영화는 줄곧 진아의 시선과 감정을 따라가면서도, 주변 인물들의 세계까지 포용한다. 진아의 세계에 다른 인물이 들어올 틈은 없지만, 영화는 더 넓은 범위를 다루며 진아의 삶이 확장될 여지를 만든다. 그 과정을 섬세하고 자연스럽게 그린다. 닫힌 마음을 열고 소통의 문을 연다는 단순한 메시지가 현실의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포스터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영화에서 진아가 겪는 일들은 사건이라 부를 만한 일이 아니다. 중반부까지 주요 서사가 무엇인지 판단하기 힘들 정도로 일상적인 이야기가 이어진다. 진아의 심리를 직접 설명하는 대사나 드러내는 사건도 없다. 묵묵히 이어폰을 낀 진아의 뒤를 따라가며 그의 가족과 이웃, 직장에서 겪는 일을 보여준다. 직장에서의 일은 진아의 현재, 가족의 일은 진아의 과거를 상징한다. 거기에 아파트 이웃과의 일은 미스터리로 나아가며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묘한 세계로 안내한다.

진아는 아무것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 한다. 혼자 사는 걸 좋아하기보다 외부의 자극이 자신의 세계를 망치는 걸 경계한다. 영화는 진아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관계 맺는 데까지 나아가길 바라지 않는다. 그저 눈을 뜨고 귀를 열어 소통할 준비 단계까지만 움직이길 바란다. 이 사회가 암묵적으로 규정하는 정상성에 개인을 억지로 맞추지 않고, 개인의 입장을 배려하며 더 넓은 삶의 범위를 제안하는 영화의 태도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첫 장편 영화에서 90분을 홀로 이끌어나가는 배우 공승연의 연기가 빛난다.

오는 19일 개봉. 12세 관람가.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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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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