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장수 애니메이션 주인공 심슨 가족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섰다. 전쟁의 참상을 말하려는 것일까. 심술 맞은 호머 심슨과 친절한 마지 심슨은 생기를 잃은 듯 공허한 표정이다. 개성 강한 세 자녀 바트·리사·매기 심슨도 무표정하기는 마찬가지. 26일(한국 시간) 미국 폭스 방송사 ‘심슨가족’ 공식 SNS에 올라온 이 그림은 사흘 만에 전 세계에서 6만6000번 넘게 리트윗되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 중산층 가족의 전형으로 꼽히는 심슨가족은 어쩌다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었을까. 지난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삶이 무너지자, ‘심슨가족’ 프로듀서 제임스 브룩스가 제작진에게 전화를 걸어 ‘연대의 그림’을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프로그램 총괄 프로듀서인 알 진은 영국 PA 통신을 통해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지지하고 이 상황(전쟁)이 끝나길 바란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공격을 개시한 지 닷새 째. 평화를 지지하는 예술인들의 반전(反戰) 행보가 전 세계에서 뜨겁다. 영화 ‘데드풀’(감독 데이빗 레이치)로 유명한 미국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와 배우 겸 모델 블레이크 라이블리 부부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해 기부해달라고 호소하며 자신들도 최대 100만 달러(약 11억9800만원)를 후원하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배우 밀라 요보비치는 SNS에서 “내 조국과 이웃들이 폭격을 당하고 있다”며 관심과 도움을 호소했다.
배우 숀 펜은 우크라이나로 직접 날아갔다. 러시아의 침공을 비판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서다. 그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숀 펜은 양국 긴장이 고조됐던 지난해 11월에도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현지 군인들을 만났다. 우크라니아 대통령실은 숀 펜의 이번 방문을 알리며 “숀 펜이 다른 많은 사람, 특히 서방 정치인들에게 부족한 용기를 보여주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그가 이 같은 용기와 정직함을 보여준 것에 대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제무대에선 ‘친(親) 푸틴’ 행보를 보인 예술가들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예술가들뿐 아니라, 러시아를 대표하는 예술단체로도 보이콧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카네기홀 공연에서 러시아 출신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를 뺐다. 두 사람은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침공해 합병했을 당시 이를 지지하는 성명에 동참한 ‘친 푸틴’ 인사다. 이들의 빈자리는 캐나다 출신 지휘자 야닉 네제 세겡과 한국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채웠다. 게르기예프는 다음 달 1~2일 플로리다 아티스-네이플스에서 열리는 빈필 공연에도 오르지 못한다. 그가 이끄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오는 5월 공연도 취소됐다.
유럽 최대 음악 축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ESC) 측은 오는 5월 이탈리아에서 열릴 행사에서 러시아 가수들의 참여를 금지했다. 행사를 주관하는 유럽방송연맹 노조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례 없는 위기를 고려할 때, 올해 행사에 러시아 가수를 참가시키는 것은 대회에 오명을 씌우는 일”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이 대회에 참여했던 러시아 가수 마니자는 SNS에서 “지금 벌어지는 공격은 우리 국민 뜻에 어긋난다”며 러시아 정부를 비판하는 취지로 글을 쓰기도 했다.
팝스타들은 러시아 공연을 잇달아 취소했다. 영국 록밴드 그린데이와 미국 팝밴드 AJR은 각각 오는 5월과 10월 모스크바에서 열기로 했던 공연을 취소했다. 러시아 가수들도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나섰다. 미국 롤링스톤에 따르면 러시아의 ‘랩 대부’로 불리는 옥시미론은 “많은 러시아인들이 전쟁에 반대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뜻을 밝힐수록 이 공포도 빨리 끝날 것”이라며 매진된 6개 공연을 취소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