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자(五味子) [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오미자(五味子) [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박용준 (묵림한의원 원장, 대전충남생명의숲 운영위원)

기사승인 2022-05-02 13:14:18
박용준 원장
오미자는 보통 5월에 작고 귀여운, 약간 붉은빛이 도는 황백색 꽃을 피운다. 오미자 꽃이 피는 시기에는 그 향이 주변을 물들이는데 곤충들에 의해 수분이 이루어지는 충매화로 여겨지지만, 생각보다 벌이나 나비가 많이 찾지 않아 보인다. 벌 이외의 개미나 다른 곤충들에 의한 수분이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암술 부위에 점액질이 다른 꽃에 비해 많이 분비되는 것으로 보아 바람에 의한 수분, 즉 풍매화의 경향도 보인다. 

오미자 꽃은 여러 문헌에 ‘꽃은 암술 수술이 따로 피는 단성화이며 암수딴그루 나무’라고 기재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오미자는 암수 한 그루이면서 다른 가지에 각각 암꽃과 수꽃이 맺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한 빛의 세기 등에 의한 요인으로 암술만 피는 줄기와 수술만 피는 줄기가 해를 바꿔 나타나기도 한다니, 오미자는 환경의 변화 속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진화의 방식과 형태가 남다른 나무인 듯 싶다. 

오미자는 다섯 가지의 맛을 지닌 열매라는 뜻으로, 동양철학의 기본인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오미(五味)는 산(酸 : 신맛), 고(苦 : 쓴맛), 감(甘 : 단맛), 신(辛 : 매운 맛), 함(鹹 : 짠맛)이다. 이 다섯 가지 맛이 지닌 고유한 속성이 인체의 장부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는 것이 오미론(五味論)이다. 음양오행에서 신맛은 인체의 간장과 담에 배속되고 신맛의 음식을 섭취할 때 간장과 담으로 가서 이롭게 한다. 쓴맛은 심장과 소장을 이롭게 하고, 단맛은 비장과 위를 이롭게 하며, 매운맛은 폐와 대장을 이롭게 한다. 짠맛의 음식은 신장과 방광을 이롭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오미론이 인체에 미치는 내용이다. 

오미자는 이런 다섯 가지 맛을 지니지만 그 중에서 신맛이 상대적으로 더 강하다. 오미자의 기운은 따뜻하고(溫), 약효는 윤폐지해(潤肺止咳), 온신장양(溫腎壯陽), 익위생진(益胃生津), 영심안신(寧心安神), 수렴고삽(收斂固澁)한다. 즉 폐를 촉촉이 하여 기침을 멈추게 하고, 신장의 양기를 강하게 하며, 위의 소화 기능을 도와 인체에 필요한 진액을 생성하며,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정신을 안정시킨다. 수렴고삽(收斂固澁)은 장부의 허하고 손실됨과 정기가 부족한 증상을 치료하는데, 기혈과 정액이 안으로 수렴하지 못하여 손상됨을 다스린다. 수렴고탈(收澀固脱)이라고도 한다. 

오미자 꽃(왼쪽)과 오미자열매.

收斂固澁治療因臟腑虛損,正氣不足,失於固攝所致的氣血精液耗散滑脱的方法。又稱收澀固脱。 

원나라 때 홀사혜(忽思慧)가 쓴 ‘바른 음식 섭취 원칙’이라는 뜻의 《음선정요(飮膳正要)》에는 오미자를 이용한 처방들이 기재되어 있다. 21폭의 인물풍경을 담은 그림과 167폭의 사물들의 그림이 담긴 이 책은 체계적인 사회문화적 음식위생과 보건영양학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

<음선정요(飮膳正要)>에 실린 인물풍경 한편.

무더위가 시작되는 요즘 같은 시기에 오미자가 들어간 처방으로 유명한 것이 생맥산(生脈散)이다. 오미자, 인삼, 맥문동으로 구성된 이 처방은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인 ‘기생충’에서 상류 계급을 대표하는 박 사장이 집에 들어오면 냉장고를 열고 마시는 음료가 바로 이것이다. 생맥산은 맥문동, 인삼, 오미자가 2:1:1 비율로 들어간 매우 간단한 방(方)이라서 민간에서도 많이 이용하고 있는데 증상에 따라 각각 약물 비율을 가감하여 사용하면 더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따뜻한 기운으로 온폐지해(溫肺止咳)하는 인삼(人蔘)과 시원한 기운으로 폐열을 식히면서 진액을 보충해주는 맥문동(麥門冬), 그리고 오미자(五味子)의 수렴고탈(收澀固脱)하는 새콤한 맛과 향으로 여름철의 뜨거운 열기에 손상되기 쉬운 폐의 순환을 돕는다. 생맥산을 만드는 방법은 먼저 오미자를 ​찬물이나 상온의 물에 하루 정도 담가서 냉장실에 보관한 후 꺼내어 오미자 알갱이를 걸러서 버리고 나면 비로소 고운 붉은색의 오미자차로 우러난다. 오미자를 뜨거운 물에 끓이면 떫은 맛과 신맛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을 냉침법(冷沈法)이라 하는데 많은 차를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 이용한다. 특히 꽃을 이용한 차 중에 이런 냉침법을 이용하여 향과 맛을 지킨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십여 년 전에 제작되었지만, 코로나 상황을 마치 예견한 것처럼 많은 상황이 일치하는 <컨테이젼(Contagion)>이라는 영화에서 나온 개나리 시럽도 개나리꽃을 이용하여 이런 방식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이렇게 준비된 오미자차에 인삼과 맥문동을 넣고 다시 끓이면 생맥산이 완성된다. 생맥산에서 인삼 대신, 길경(桔梗) 즉, 도라지를 넣으면 청성차(淸聲茶)가 되는데 청성차는 '목소리를 맑게 하는 차'라는 이름처럼 여름철 목감기로 목 안이 따갑고, 목소리가 잘 안 나오고 증상을 치료하는 데 쓴다. 

작지만 아름다운 오미자 꽃이 피어나는 이 계절에, 어서 빨리 오미자의 새콤한 맛을 전해줄 오미자 열매가 무르익기를 바라는 것은, 조급함에 너무 익숙해진 바빠진 세상의 인간적인 욕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최문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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