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에 빌런이 없는 이유 [‘우영우’ 신드롬②]

‘우영우’에 빌런이 없는 이유 [‘우영우’ 신드롬②]

기사승인 2022-07-20 14:03:01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컷.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돌아보면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는 인물들 역할이 명확한 드라마다. ‘권모술수’와 ‘봄날의 햇살’이란 별명이 붙은 동료 변호사 권민우(주종혁), 최수연(하윤경)부터 직장 내 멘토 역할을 충실히 보여주는 정명석(강기영), 동료보다 더 가까운 위치에서 우영우를 지켜주는 이준호(강태오), 유일한 친구 동그라미(주현영)까지. 드라마는 우영우의 주변 인물들이 각자 위치를 잘 지키고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친구였는데 배신을 하거나, 빌런이었는데 친구가 되는 서사는 6회까지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처럼 보인다. 굳이 빌런을 꼽자면 주인공 우영우에게 협조하지 않는 걸 넘어 견제하고 방해하는 권민우가 유력하다. 또 매회 벌어지는 사건에서 새로운 빌런이 등장한다.

이를 다른 관점으로 볼 여지가 있다. 1회만 해도 대부분 인물에 빌런 혐의가 붙었다. 정명석 변호사는 한선영 대표(백지원)에게 우영우 채용에 대해 항의하며 “(자폐인 걸 알면서도) 이런 친구를 받으신 겁니까”, “저랑은 다르지 않습니까”라고 함께 일하길 거부한다. 최수연은 “난 걔 보면 괴로워요”라며 로스쿨 재학 당시 안쓰러워서 도와준 우영우에게 뒤처진 과거에 대해 자조한다. 우영우에게 가장 특별한 존재로 그려지는 이준호는 처음엔 우영우가 변호사일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동그라미 역시 학창시절 우영우에게 벌어지는 폭력을 긴 시간 모른 척 했다.

그래서 ‘우영우’는 우영우가 주인공이 아닌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부분 장면에 우영우가 등장하고, 한가운데서 이야기를 모아 이어간다. 하지만 회사에 적응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 외에 우영우는 크게 성장하거나 변화하지 않는다. 달라지고 성장하는 건 주변 인물들이다. 정명석 변호사는 “그건 그냥 보통 변호사도 힘든 일”이라고 말한 후 곧바로 “미안해요. 그 말은 실례인 것 같네”라고 사과한다. 최수연은 회전문을 못 지나가는 우영우를 지나치려다 다시 돌아와 도와준다. 이준호는 봉사 활동하는 것으로 착각한 후배 말에 우영우가 상처받았을까 걱정한다. “너랑 있으면 내가 얻는 건 뭐냐”고 따지던 동그라미도 우영우 가장 가까이에서 필요한 도움을 주는 친구로 발전했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컷.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변화하는 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자폐인의 병명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것을 시작으로 자폐 장애가 중증도에 따라 얼마나 다른지, 그들에게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거나 거짓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하게 한다. 반향어를 말하는 것, 상대 마음에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특징이고, 시끄러운 소음과 회전문에 얼마나 취약한지, 본의 아니게 가족을 얼마나 외롭게 하는지도 알려준다. 매회 우영우를 처음 만나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태도가 얼마나 무례하고 기분 나쁜 것인지 느끼게 한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흉내 내는 것이 조금도 재미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듯 하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에게 동그란 물건이  갖는 의미는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시청자들에 의해 이미 온라인에서 회자되고 있다.

‘우영우’에서 권민우가 가장 빌런처럼 보이는 건 우영우 근처에서 지내면서도 변화하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최수연에게 우영우를 “도와주지 말라”며 지나치는 1회부터 “장애가 있으니까 특별히 배려해주시는 것도 이해는 한다”고 말하는 4회까지, 우영우와 거리를 두는 권민우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우당탕탕 우영우’라고 별명을 붙인 5회에서 권민우는 자신과 우영우의 관계를 경쟁자로 정의한다. 온갖 거짓말과 권모술수를 쓰며 우영우보다 우위에 서려고 노력하는 경쟁자 권민우는 분명 빌런의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도움 되는 일만 하면서 차별을 자각하지도 못하는 인간 권민우는 현실에 흔하다. 그를 빌런으로 볼 수 있을까.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컷.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우영우’엔 권민우보다 심한 빌런처럼 보이는 인물들이 아무 때나 등장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변호사를 본능적으로 불신하는 영란 할머니부터 이준호가 봉사 활동을 한다고 믿는 대학 후배, 우영우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는 의뢰인, 위아래로 훑어보며 우영우를 신뢰하지 못하는 택시 기사, 장애를 가졌다고 법정에서 모욕하는 검사 등.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면 국가적 손실’이란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언급한다. 드라마는 이들을 빌런으로 심각하게 다루는 대신,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시민들로 이야기 속에 녹여내는 걸 선택했다. 어쩌면 그들이 ‘우영우’를 보기 전 시청자 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는 것처럼.

‘우영우’에서 등장인물은 선인과 악인, 둘로 나뉘지 않는다. 동그라미와 이준호, 최수연이 우영우를 돕는 태도와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권민우처럼 우영우를 돕거나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부터 그럴 생각이 애초에 없는 사람, 오히려 혐오하는 사람까지 조금씩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드라마 속에 존재한다. 드라마에서 우영우를 제외하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빌런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세계다. 우리가 사는 드라마 밖 현실은 다를까. 누구든 될 수 있는 너와 나를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는 권민우를 욕하는 대신, 이렇게 제안하는 듯 하다. “당신은 이 중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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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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