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쉼터? 몰라. 점심 먹고 나면 더우니까 여기 앉아있는 거야.”
낮 최고기온 30도,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18일 종로3가역. 오후가 되자 노인들이 삼삼오오 지하철 역사 안으로 모여들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다.
계단에 걸터앉아 연신 부채질을 하던 정모씨(92)는 “말복이 지났지만 점심 쯤 되면 아직 덥다. 지하철역이니까 바람도 불고 해서 여기 앉아있는 것”이라며 “집에 있으면 심심하기도 해서 자주 온다”고 했다. 기자가 ‘무더위쉼터가 있는데 왜 여기서 쉬냐’고 묻자 “그런 게 있나, 잘 모른다”고 답했다.
무더위쉼터는 폭염에 지친 어르신 등 취약계층이 쉬어갈 수 있도록 냉방시설을 갖춘 실내 공간이다. 서울시는 폭염 피해 예방을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무더위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4000곳 이상이 설치됐으며 오는 9월30일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그러나 홍보가 부족해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종로3가역 출구 계단에 걸터앉아 더위를 피하던 이모씨(62)는 “더우니까 그늘진 계단에 앉아있는 것”이라며 “무더위쉼터 같은 게 있는지는 몰랐다”고 밝혔다. 최모씨(71)도 “무더위쉼터 자체를 처음 들어봤다”면서 “사실 있어도 안 갈 것 같다. 그런 곳을 안 가버릇 해서 있다고 해도 이용하기엔 거리낌이 있다”며 손부채질을 했다.
역 근처 돈의동 쪽방상담소에서 무더위쉼터를 운영 중이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돈의동 쪽방촌 주민 이정숙(82)씨도 종로3가역 출구 계단에 앉아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이씨는 “최근 건물에 에어컨이 설치됐지만 별로 효과가 없어서 집밖으로 나오게 된다”고 털어놨다.
폭염대책의 일환으로 설계된 정책이 현장에선 크게 체감되지 않는 모습이다. 이날 오후 1시, 돈의동 쪽방상담소의 무더위쉼터는 텅텅 빈 상태였다. 돈의동 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지난해엔 하루 3~4명 정도 이용했는데, 올해엔 1~2명 올까 말까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 쪽방촌 에어컨 설치 사업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돈의동, 창신동 등 5개 쪽방촌에 에어컨 150대를 단계적으로 설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원규모가 작아 모든 주민들이 누리기엔 한계가 있다. 지난 5월 기준 서울 5개 쪽방촌 내에는 쪽방 282개동 3516실이 있으며 거주민은 2453명이다. 에어컨 150대를 설치한다고 해도 18%에게만 돌아가는 셈이다.
돈의동 쪽방촌 주민 김옥순(86)씨는 “혼자 살아서 그런가, 우리집엔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았다. 낮이 되면 더워서 집밖에 나와 있다”고 호소했다. 또한 “무더위쉼터가 있는지 몰랐다. 누가 와서 이런 게 있다고 말해줘야 하는데, 혼자 있으니 잘 모른다”고 토로했다.
김모씨(65)도 “3층에 거주하고 있는데 우리 동은 2층에만 에어컨이 설치됐다. 선풍기는 종일 틀고 더우면 샤워를 한다. 너무 더운 날엔 에어컨 바람이 오는 방에 이웃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며 “에어컨이 복도에 설치된 탓에 문을 열어야 그나마 냉기를 느낄 수 있다. 사생활 보호도 안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무더위쉼터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감염이 우려돼서 못 가겠다. 작년에 이곳 주민들이 코로나19로 많이 돌아가셨다”면서 “이곳에 20년 넘게 살았는데 매년마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 이번엔 겨울이 오기 전에 실질적이고 세심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무더위쉼터, 에어컨 설치가 취약계층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위해선 근본적인 주거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활동가는 “사실 무더위쉼터나 에어컨 설치 같은 폭염대책은 한계가 있다. 쪽방촌 중 목조 건물이 45% 가량 되는데 무거운 에어컨 실외기를 얼마나 더 달 수 있겠나. 무더위쉼터도 애초에 주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면서 “재개발 등을 통해 주거환경 자체가 개선되지 않으면 미봉책에 불과한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