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사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백신 가격이 상승할 조짐이다.
화이자는 내년부터 미국에서 코로나19 백신 ‘코미나티주’의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다. 미국 제약산업 전문지 피어스파마를 비롯, 복수 외신에 따르면 화이자는 내년 1분기부터 코미나티주 가격을 1도즈당 130달러(18만3900원) 내외로 책정할 것을 예고했다.
화이자의 백신 가격 조정은 이미 소폭으로 꾸준히 진행돼 왔다. 미국 정부는 올해 6월 마지막으로 화이자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가격은 1도즈에 30.48달러로 27일 환율 기준 우리 돈 4만3000원 수준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7월에는 1도즈당 24달러(3만3900원), 앞서 2020년 7월에는 19.5달러(2만7500원)를 지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가격 조정 폭은 이례적으로 크다. 가장 최근 계약인 6월 가격에서 4배 이상 뛰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코미나티주 가격은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접종되는 백신들의 가격과 맞먹게 된다. 현재 미국의 백신 가격은 독감 50~95달러(7만800원~13만4500원), 폐렴 141달러(19만9700원), 간염 145달러(20만5300원), 대상포진 205달러(29만300원) 등으로 책정되고 있다.
화이자의 이런 결정은 미국 정부의 백신 공급 관련 방침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까지 미국에서 코미나티주 접종은 무상으로 진행됐다.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미국 정부가 화이자와 계약을 체결하고 백신을 대량 구매, 의료기관에 공급하는 방식을 취했다. 하지만 이미 대다수 인구가 1·2차 기초접종을 마쳤고, 코로나19의 풍토병화로 팬데믹의 시급성이 점차 해소되면서 내년부터는 백신 무상 접종을 중단하기로 가닥이 잡혔다.
백신 용량의 변화도 가격 책정에 영향을 미쳤다. 안젤라 루킨 화이자 대표는 미국에서 소비자의 선호도에 따라 현재 다회용 바이알이 아닌, 단일 용량의 바이알로 백신을 공급할 것임을 가격 상승 이유 중 하나로 밝혔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코로나19 백신이 무상으로 접종되고 있다. 접종 유료화와 관련해 구체적인 계획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다만, 언제까지 무상 접종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질병관리청의 코로나19 백신 도입 및 접종시행 관련 예산은 올해 3조249억원 규모였지만, 내년도에는 9318억원으로 대폭 감소한다.
화이자 백신의 국내 공급 가격도 변동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60세 미만 성인 및 청소년에서 화이자 백신이 1·2차 기초접종에 가장 많이 사용됐다. 1차와 2차 접종은 같은 종류의 백신으로 접종하는 것이 원칙이며, 이후 추가접종 역시 기존에 화이자, 모더나 등 mRNA 백신을 접종했던 사람에게는 동일하게 mRNA 백신을 추가 접종하는 것이 권고된다. 팬데믹 초기와 같은 폭발적인 수요는 없더라도, 추가 접종에 따른 일정 수요가 지속되는 셈이다.
국산 백신이 대체제로 활용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코비원’은 화이자와 다른 합성항원 백신이지만, 최근 보건당국으로부터 3차와 4차 추가접종에 제한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mRNA 백신 금기·연기 대상자이거나, mRNA 백신 접종을 원하지 않는 18세 이상 성인 가운데 1·2차 접종을 완료한 사람을 대상으로 스카이코비원을 접종할 수 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 가격 정보는 공개되지 않는다. 전량 정부와 기업이 구매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이다. 다만 합성항원 백신은 mRNA 백신 대비 가격이 저렴하다. 합성항원 백신은 인유두종바이러스, B형간염 등의 백신에 적용된 전통적인 기술이다. mRNA 기술이 백신에 적용돼 상용화한 사례는 코로나19 백신이 유일하다.
이런 기대감이 반영되며 SK바이오사이언스의 주가도 급등했다. 미국 현지에서 화이자 백신의 가격 상승 소식이 전해진 24일 SK바이오사이언스 주가는 전 거래일(7만1800원) 종가 대비 3400원 상승한 7만52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튿날에는 최고가 8만원을 기록하고 7만8200원에 장을 마쳤다.
한국화이자는 국내 백신 공급 가격 정책에 대한 말을 아꼈다. 화이자 관계자는 “백신 가격은 국가별로 인구, 경제규모, 의료보험 체계가 달라서 상이하게 책정되어 있다”며 “국내에서는 코로나19 백신 가치와 원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격을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에서의 가격 조정은) 국내 가격과는 별개의 사안이고, 현재 코로나19 관련 의약품은 모두 정부와 협의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화이자 측에서 밝힐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다”라고 설명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