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문 두드리는 수험생들, 반발하는 의료계…‘지역의사제’ 시험대

의대 문 두드리는 수험생들, 반발하는 의료계…‘지역의사제’ 시험대

기사승인 2026-01-28 06:00:12 업데이트 2026-01-28 11:02:21
서울의 한 의과대학 강의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지역의료를 책임질 미래 의사들을 선발하는 ‘지역의사제도’가 단순히 의과대학에 쉽게 진학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조짐이다. 수험생과 학부모 사이에선 이른바 ‘지방 유학’ 움직임까지 보인다. 의료계는 수도권 환자 쏠림 등 지역의료 현장의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지역의사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라며 정교한 제도 설계를 촉구했다.

28일 정부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20일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정안’(이하 지역의사법)을 입법예고했다. 시행령에 따르면, 서울·경기·인천을 제외한 비수도권 지역에 있는 의대는 입학 정원의 일정 비율을 ‘지역의사 선발전형’으로 모집하게 된다.

지역의사 전형이 적용되는 지역은 △대전·충남 △충북 △광주 △전북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강원 △제주 △경기·인천 등 9개 권역이다. 관련 대입 전형은 2027학년도부터 서울권을 제외한 32개 의대에 도입될 예정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해당 지역에서 졸업해야 전형에 응시할 수 있다.

다만 경기도와 인천에 위치한 가천대, 인하대, 아주대, 성균관대, 차의과대의 경우 해당 대학이 위치한 지역을 연고지로 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을 지역의사 전형으로 선발할 수 있도록 했다. 경기·인천 지역에서도 경기 의정부·남양주·이천·포천과 인천 서북권(서구·강화군), 중부권(중구·동구·남구·옹진군)의 지역 고등학교 졸업(예정)자만 인정한다. 예컨대 의료 취약지인 인천 강화군에서 10년간 의무복무 하는 인천 서북권 지역의사로 선발되려면 인천 강화군 또는 서구 소재 중·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인 지역의사제는 의대 입학 단계에서 지역의사 전형을 확대하고, 이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대신 졸업 후 10년간 해당 지역에서 의무복무 하도록 하는 제도다. 복무 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복지부 장관이나 시·도지사가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의사 면허가 정지된다. 지역·필수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안으로 추진돼 지난해 12월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학생·학부모 10명 중 7명 “의대 진학 위해 전략적 이주”

복지부는 의대 입시 전략 차원의 단기간 주소 이전이나 이동만으로 지역의사 전형 지원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게 제한을 걸어뒀지만, 벌써 지역의사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학부모들 사이에선 자녀의 의대 진학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진다면 거주지를 옮기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분위기다.

서울의 한 의과대학 강의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종로학원이 지난 21~25일 온라인으로 실시한 지역의사제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중·고교 학생과 학부모 975명 가운데 69.8%가 ‘지역의사제 도입 시 지원 가능한 지역으로 이동이 늘어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지역의사 전형으로 진학한다면 장기적으로 해당 지역에 취업 및 정착을 할 것인지를 묻는 말에는 전체 응답자의 50.8%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29.5%는 ‘정착 의사가 없다’고 답해 의무복무 기간 이후 이탈 가능성도 적지 않음이 확인됐다.

정부는 “의대 입학은 학생의 인생 전체를 고려해 신중히 결정할 문제”라며 ‘지역의료 붕괴에 대응한다’는 지역의사제의 취지가 흐려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지역의사제를 단순히 의대에 쉽게 진학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종로학원 조사에서 ‘지역의사가 된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답변은 8.3%에 불과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애초 지역의사제를 시작한 취지는 우수한 학생들이 전국 의대에서 교육받고 졸업한 뒤 대도시로 몰려오는 현상이 이어지며 지역 의료취약지 문제가 해결되지 못함에 따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라며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는 것은 학생의 인생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역의사제로 지역 내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서 나고 자란 지역에서 의술을 펼치며 지역의료 공백에 기여해달라는 취지에서 법이 시행되는 것이지 의대를 쉽게 가는 방편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면서 “최소 10년 이상 해당 지역에 근무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다음 달 2일까지 지역의사법 관련 의견을 수렴하고, 2월 중 규제 심사와 법제처 심사를 받아 차관·국무회의를 거쳐 공포·시행할 예정이다.

의료계 회의적…“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의료계는 지역의사제를 통한 의대 정원 증원 자체에 회의적이다. 정부는 2027학년도 이후 의대 모집인원(3058명)을 초과하는 증원분 전원을 ‘지역의사제’ 정원으로 둘 방침이다. 대학별 증원분 배분은 복지부와 교육부가 진행한다. 각 대학은 정원 조정에 대한 학칙 개정을 거쳐 4월 말까지 대학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변경된 2027학년도 모집인원을 제출해야 한다. 5월 말에는 이러한 사항이 모두 반영된 2027학년도 대입 수시모집요강을 발표하게 된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다만 의료계의 반발이 변수다. 전공의들은 “지역의료의 핵심은 단순한 의사 수의 문제가 아니라, 적절한 배치와 지속 가능한 근무 환경에 있다”며 실질적인 보상 체계 마련과 법적 안전망 구축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27일 입장문을 통해 “지역의 의료 기반은 의료진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면서 “수도권으로 환자가 쏠리는 현상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지역의료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직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부 의대의 24·25학번 ‘더블링’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대전협은 “강의실과 실습 기자재 부족은 물론, 카데바(해부학 실습용 시신) 확보조차 어려운 상태로 파행적인 학사 운영이 이뤄지고 있다”며 “충분한 교육·수련 환경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배출되는 의료 인력은 국민 건강에 장기적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의대 교수들로 구성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의대교수협)도 논평을 내고 “2025년 휴학생 1586명의 2027학년도 복귀 변수를 포함한 시나리오 검증은 필수”라며 “의대 교육 및 수련 현장의 운영계획을 검증하고, 즉시 실행 대책 패키지를 확정해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