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의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인증 시범사업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의료민영화의 첫 발이 될 수 있다는 의료계와 야당의 반대에 직면한 탓이다.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9명은 복지부 ‘비의료 건강관리 서비스 활성화 지원’에 편성된 예산 2억원을 전액 삭감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남 의원이 지난 7일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해당 사업에 책정된 예산을 감액해야 한다고 지적하자,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저희는 꼭 필요한 예산이라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시행하는 해당 사업은 12개 업체의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를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문제는 12개 업체 중 송파보건소를 제외한 11개 업체가 민간 기업이라는 점이다. 삼성생명·KB손해보험 등 대기업 민간보험사도 포함됐다.
‘의료민영화’ 논란에… 복지부 “유관단체 유권해석 거쳤다”
무상의료운동본부 등 시민사회 단체는 해당 사업을 오랫동안 반대해왔다. 영리기업의 의료행위를 합법화한 것과 다름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비의료’라는 사업명과 달리 만성질환 관리는 엄연한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의료법상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다. 또 민영보험사가 수집한 개인정보를 토대로 보험료 인상이나 보험금 지급 거절 등에 활용해 의료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문제 될 것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지난달 24일 본지 기사(민간보험사 건강관리서비스, 의료민영화 첫발 되나)에 대한 해명자료를 내고 “의협 등이 참여한 민관합동법령해석위원회의 의료법 유권 해석을 통해 의료와 비의료 건강관리를 구분했다”고 설명했다.
또 보험료 인상 등에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복지부는 “민영보험사를 포함한 건강관리서비스 기업이 획득한 국민의 건강․의료정보를 보험료 인상이나 보험금 지급 거절 등에 활용하는 것은 개인정보의 목적 외 사용으로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고 했다.
의사협회 “복지부, 만성질환자 관리 내용 은근슬쩍 포함”
조 장관의 “(유관 단체들과) 실무적인 협의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10월20일 국정감사)는 해명과 달리 의료계의 반발은 거셌다. 의협은 당초 ‘만성질환자의 건강관리 서비스’에 관해 협의한 바가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김이연 의협 홍보이사는 9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만성질환 관리가 은근슬쩍 협의 내용에 포함돼 있어 놀랐다”며 “고혈압, 당뇨 등 환자들의 체중 관리, 식단 등은 모두 의학적 처방에 해당한다. 특히 민간보험사에 환자의 정보가 넘어가면 이를 근거로 보험료를 올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환자들의 병리적 소견은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이를 의사가 아닌 사람이 상담한다든지 약을 조절한다든지 하는 건 무면허 의료행위라는 것이 의협 입장”이라며 “만성질환자 관리에 대한 내용은 복지부와 협의한 바 없다. 정부가 이를 비의료 건강관리라고 자의적으로 정리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검토 입장이었던 대한약사회도 입장을 선회했다. 약사회는 지난 7일 입장문을 통해 “비의료건강관리서비스는 명백히 약사들의 전문성에 기반해 이루어지는 복약지도의 영역”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이에 대한 철회를 요구한다”며 반대에 나섰다.
특히 “보건의료인이 아닌 민간 코디네이터에 의해 행해지는 일련의 행위를 현장에서 관리·감독할 수 없는 현실에서 결국은 비전문적인 보건의료행위가 횡행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돼선 안 된다”며 “취합되는 개인정보에 대한 관리 또한 민간의 영리화 영역으로 넘어가게 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9일 쿠키뉴스에 “의료계가 우려하는 입장이 무엇인지 소통하려 한다”며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입법 난항에 가이드라인 개정… “국회 보고도 없었다”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는 9월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 및 사례집’을 개정해 그동안 원칙적으로 불가능했던 만성질환자 대상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를 의료인이 의뢰한 경우를 전제로 해 대폭 허용했다.
그러나 가이드라인 개정 당시 당·정협의나 국회 보고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민영화 논란으로 입법이 어려우니 ‘꼼수’를 썼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앞서 2010년, 2011년 두 차례 국회에서 ‘건강관리서비스법’으로 국회에서 입법이 시도됐으나 의료민영화 논란으로 무산된 바 있다.
남인순 의원은 지난달 20일 복지부 등 종합 국정감사에서 “2년 동안 시행하는 시범인증 사업을 국회에 보고도 안 하고 당·정 협의도 진행하지 않았다. 국정감사 업무보고에도 포함되지 않았다”면서 “상당히 우려되는 정책이라는 보건의료 단체들의 지적이 있는데 국회에 제대로 보고도 안 했다”고 질타했다.
“건강관리서비스, 영리병원 허용으로 이어질 것”
의료단체는 해당 사업을 시작으로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등 의료민영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7일 입장문을 통해 “한국에서는 영리기업들이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다른 말로 하면 영리병원이 금지돼 있다. 정부는 만성질환부터 이런 보호장치를 허물려는 시도”라며 “기업들에 의료를 돈벌이로 넘겨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전 부처의 산업부화를 추진한다는 말이 무섭게 복지부도 공공의료 예산은 삭감하고 의료민영화에 매진하고 있어서 큰 문제”라며 “건강관리서비스는 만성질환에서부터 사실상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심각한 정책으로, 중단돼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