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은행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자 수익이 과도하다’, ‘사회 환원이 부족하다’, ‘과점적구조로 경쟁이 없다’, ‘성과급과 퇴직금이 너무 많다’ 등 윤석열 대통령부터 김주현‧이복현 금융당국 수장까지 연일 은행을 지적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다양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정부가 은행을 압박하는 근본 원인은 간단합니다. 미국의 급격한 긴축으로 금리가 오르면서 국민들이 대출 이자에 너무 큰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 연방준비제도는 높아진 물가를 잡기 위해 정책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3월 0.25%인 금리를 올해 2월 4.75%까지 끌어 올렸습니다. 이와 연동된 국내 기준금리도 같은 기간 1.25%에서 3.50%로 치솟았습니다. 이에 따라 국민이 체감하는 은행의 대출 금리도 따라 올랐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가계대출 금리는 지난해 3월 3.98%에서 지난해말 5.60%까지 인상됐습니다.
국민들의 대출이자 고통이 크지만 정부가 이를 모두 해결해 줄 수 도 없는 상황입니다. 은행권 가계대출만 900조원이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한정된 예산의 제약을 받는 정부 지원은 소위 ‘취약계층’으로 불리는 저소득층, 독거노인,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장애인 등에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나머지 국민들의 이자 부담을 무시할 수도 없죠. 정부에 대한 여론 악화는 곧 정권교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정부로서도 부담인 상황입니다.
이때 정부가 꺼내든 카드가 은행을 압박하는 방법입니다. 이는 금리 인상을 억제하고, 정부로 향할 수 있는 국민 불만을 은행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에게는 일거양득의 방안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정부의 은행 압박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규제산업의 특성상 정부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는 은행들은 금리를 내리거나 대출 만기를 연장하고, 사회공헌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채용까지 늘렸습니다. 여론의 질타도 모두 은행에 쏠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공짜는 없습니다. 정부가 은행을 압박해 금리를 내리는 데 따른 대가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다만 그 대가는 장기적으로 나타는 만큼 국민 체감도가 떨어져 느끼지 못 할 뿐입니다. 금리 인상의 충격을 그대로 흡수하든지 기간을 늘려 미래에 나눠 받든지 차이만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큰 대가는 국내 금융산업의 발전이 저해되는 것입니다. 금융산업 발전이 느려진다는 것은 단순히 개별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산업 발전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컨대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국내 방산제품들이 폴란드에 대거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이같은 방산수출의 뒷면에는 국내 금융기관의 대출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국내 금융기관이 수입대금을 빌려주면 그 돈으로 폴란드는 국내 무기를 구매하는 것입니다. 해외 대형 건설사업도 대부분 비슷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금융산업의 발전이 늦춰지면 이는 전체 산업에도 영향이 불가피하게 됩니다.
금융산업은 신뢰를 기반으로 돌아가고, 불확실성을 가장 경계합니다. 예상할 수 없는 정부의 개입은 시장의 예측성을 떨어트립니다. 이는 외국 투자자들이 국내 금융시장을 떠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정부의 은행 압박이후 은행 외국인 주주들의 이탈은 이러한 사실을 입증합니다. 또한 정무적 판단의 시장 개입은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하지 않아 자원 배분의 왜곡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부가 직접 경영에 나선 대우조선 등이 어떠한 결말을 맞이했는지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결국 정부의 시장개입에도 대가는 존재하고 현 정부는 당장의 국민 고통 분담이 앞으로의 금융 및 경제 발전 보다 시급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7일 내놓은 “3년 후 금송아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 손에 물 한 모금을 달라는 니즈가 있다”는 발언은 이러한 정부의 의중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다만 정부의 선택이 불가피했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합니다. 정부의 시장 개입 예측성을 높이고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금융당국 수장의 구두 압박보다는 구체적인 근거와 제도를 바탕으로한 행정지도나 규제 등이 시장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 속에 오판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3년 후 금송아지 대신 당장의 물 한모금을 선택한 만큼 3년 후를 위한 대비도 필요한 시점입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