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씨는 “하루하루 똑같다. 아이 보고 집 안 일하고 이래저래 치여 힘든데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나만 이러고 사는 건지,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된 건지 답답하고 눈물만 난다”며 “주변에선 병원에 가보라는데, 엄두가 나질 않는다. 약을 먹으면 수유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 걱정이 돼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다. 산후우울증은 출산 후 우울한 기분, 불안감, 죄책감 등을 부른다.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로 폄하하기도 하며, 일상 전반에서 기능 저하가 경험하기도 한다. 산후우울감은 그보다 가벼운 질환으로, 출산 직후 최대 2주 정도 감정 기복과 우울감, 무기력 등을 갖는다.
보건복지부의 ‘2021 산후조리 실태 조사’에 따르면, 분만 후 산후우울감을 경험한 산모는 52.6%로 2018년(50.3%) 대비 2.3%p 올랐다. 출산 후 일주일 동안 나타난 산후우울위험군 역시 42.7%로 높게 형성됐다. 산후우울증은 대개 출산 후 10일 이후에 나타나며, 1년간 지속될 수 있다. 전체 산모의 10~15% 정도에서 발생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증상이 악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문제는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어도 약물 처방을 꺼려 조기 치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태아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하지만 치료 시기를 놓치면 오히려 부정적 상황이 커질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 2015년 전국 20~40대 기혼 여성 11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4차 저출산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3.7%가 산후우울증으로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 중 절반(50.3%)은 산후우울증으로 인해 아이를 거칠게 다루거나 때린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현수 보라매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9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최근 명확한 추계가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출산 이후 6개월 사이 산후우울증으로 정신과 진료를 보는 실제 비율은 2% 정도로 추정된다. 아이를 걱정해 병원에 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 교수는 “진료 환자는 매년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인데, 기존에 정신의학과 진료를 받았던 환자인 경우가 많고 불면증, 감정기복, 육아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 삶에 대한 의욕 저하 등을 호소하는 분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치료 과정에서는 인지행동 치료, 상담 치료, 경두개자극술(TMS) 등 비약물 치료법을 적용하고, 증상이 심하거나 환자가 원할 경우 약물 치료를 하기도 한다. 약물 치료는 모유를 통해 배출되지 않거나 가장 낮은 농도로 배출되는 약물을 선택해 시행한다”며 “출산 후 1~6개월 사이는 육아가 가장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아이와 산모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는 산후우울증 치료를 위해 일반적으로 항우울제(신경안정제)를 처방한다. 미국의 경우 산후우울증 전문 치료제가 나와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산후우울증 치료제로는 미국 세이지 테라퓨틱스의 ‘브렉사놀론’(상품명 줄레소)이 있는데, 60시간 동안 정맥 투여가 필요하고 약 4400만원에 달하는 비용 때문에 활용도가 낮았다.
이어 지난 4일 경구용 치료제인 ‘주라놀론’(상품명 주르주배)이 FDA로부터 승인을 받으면서 치료 접근성이 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두 치료제 모두 일반 항우울증 치료제와는 다르게 2~3일 내로 빠르게 우울감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국내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지 교수는 “미국에서 허가된 두 치료제는 효과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처방되는 항우울제는 최소 4~6주 동안 복용해야 효능을 보인다”며 “다만 효과가 빠른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의존성이 높아질 수 있고 부작용, 내성, 금단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산후우울증을 겨냥해 나온 점은 인상적이지만 안전성과 일반 항우울제 대비 효과는 아직 검증이 필요한 수준이다”라고 밝혔다.
지 교수는 산후우울증 예방을 위해 산모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살피고 주변 사회관계망을 잘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출산 직후 생긴 우울감이 2주를 넘어가지 않으며 산후우울증이 아닌 산후우울감이라고 부른다. 우울증으로 인한 증상들이 출산 이후 한 달 이상 느껴진다면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산모 우울감을 해소하려면 육아 교육, 주변의 지지 등이 뒷받침 돼야 한다.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운동, 취미활동 등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매개체를 찾는 게 좋다”며 “저출산 시대 속에서 산모의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나 보건 체계가 진료 및 육아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