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첫날, 의료 현장의 혼란이 감지된다. 대한의사협회가 수술실 CCTV 설치에 반대하며 수술실을 폐쇄할 수 있다고 강하게 반발하면서다. 게다가 설치·운영에 대한 규정도 모호해 현장에선 전신마취 수술 환자를 받기 어렵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대한의사협회는 25일 서울 용산구 협회 본관에서 ‘수술실 CCTV 의무화 관련 대회원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8∼18일 의협 회원 126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93.2%가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반대 이유(복수응답)로는 △‘의료진 근로 감시 등 인권침해’가 51.9%로 가장 많았다. △의료인에 대한 잠재적 범죄자 인식 발생(49.2%) △진료 위축 및 소극적 진료 야기(44.5%) △불필요한 소송 및 의료분쟁 가능성(42.4%)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37.6%) △외과 기피 현상 초래(33.9%) △집중도 저하(29.8%)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응답자의 55.7%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따라 수술실을 폐쇄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2년 전 이뤄진 설문조사에서 폐쇄 의향을 밝힌 의사가 2345명 중 49.9%였던 데 비해 증가한 수치다. 임지연 의협 의료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수술실 폐쇄 의향이 의미 있는 수치로 증가해 수술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이 감소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수술실 CCTV 설치가 외과의사 기피현상을 심화시켜 필수의료 붕괴를 앞당길 것이란 의견도 90.7%에 달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법적 분쟁에 휘말릴 것을 경계해 방어진료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흉부외과 전문의인 이필수 의협 회장은 “암이 임파선에 전이됐을 때는 제거 수술을 해야 하는데, 굉장히 위험한 수술이라 기피할 수도 있게 될 것”이라며 “CCTV로 감시된다면 과연 누가 소신껏 수술을 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하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신마취 환자를 받기 어렵다는 하소연도 있다. 외과의사인 이정근 의협 상근부회장은 “수술실 CCTV 설치가 의무화되면 전신마취 환자는 상급종합병원으로 보내고, 국소마취 환자만 받겠다는 동료들도 많이 있다”며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로 전신마취 수술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CCTV 설치 대신 의사들이 내놓은 대안은 ‘자율정화 활성화’다. △대리수술 처벌 강화 추진(64%) △수술실 입구에 CCTV 설치(39.8%) △대리수술 방지 동의서 의무화(39.2%) △자율정화 활성화(20.5%) 등을 통해 대리 수술 근절 등 본래 법적 취지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대리수술 처벌 강화’를 추진하겠다는 응답이 64%로, 회원들의 자율정화 의지가 확인됐다”며 “1~2%에 불과한 반사회적 의료인 때문에 선량한 의사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자율징계권을 도입해 의협에서 징계를 내릴 수 있도록 의료현안협의체에 건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설치 운영이나 안전관리 조치 등 규정이 애매한 점도 걸림돌이다. ‘설치·운영 기준의 모호함으로 인한 의료법 위반 소지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응답이 75.5%에 달했다. 이 회장은 “각 시군구 지자체 보건소마다 기준이 달라 의료 현장에 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6개월 정도의 계도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각 의료기관별 수술실 CCTV 설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는 25일 “시행일 기준 설치 현황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지자체 등과 함께 의료기관 현장 상황 모니터링을 지속하고, 직접 현장에도 방문해 시행 관련 의견을 청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