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大)혁신의 길, 정당을 이종교배 하는 법

정치 대(大)혁신의 길, 정당을 이종교배 하는 법

글‧임성은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기사승인 2023-10-23 08:33:58

국가 경쟁력을 논할 때 정부보다 더 심각한 것이 정치 부문이다. ‘법 제도의 예측 가능성’ 등의 항목은 100위권 밖에 머물고 있다. 국회에 상정되는 법안은 무더기로 쏟아진다. 하지만 이들 법안이 언제 본회의를 통과해서 현실을 조율하는 기능을 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예측이 불가능하니 사전 준비와 실행 계획은 아예 엄두도 못 내고, 심지어 무의미하다. 이렇게 기업과 정부, 국민 등 나라 전반의 경쟁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정치 특히 입법 부문이 ‘불능(不能)’으로 치닫고 있다. ‘할 수 있으되 하지 않는’ 게 지금 국회의 현 주소이다보니 ‘의도된’ 불능이 국가의 역량을 갉아먹는 형국이기도 하다.  

정치란 본디 이런 걸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민주국가에서는 여야가 치열하게 토론하고, 격돌도 하지만 우리같이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는다. 죽기 살기로 싸우면서 서로의 밥통을 부수는 일은 않는다는 의미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흑인 지도자 만델라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보복보다는 화해를 선택한 바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러지는 않았다. 사색당파로 조선이 몰락했다는 비판도 있으나, 그들에게는 토론이 있었고, 군신유의(君臣有義) 정신이 있었다. 토론의 핵심은 ‘아니되옵니다’였다. 왕과 신하가 왕권과 신권, 즉 권력을 가지려고 늘 경쟁하고, 다퉈왔지만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義)가 있었다. 의는 옳고 그름에 관한 것이고, 정치의 본령이기도 하다. 정치의 정(政)자는 한자로 바를 정(正)자에 칠 복(攵)자를 쓴다. 바르게 하도록 채찍질하는 것이 곧 정치의 본업이다. 해방 이후는 어땠을까?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이후 상당 기간 권위주의 군사정권이 통치했지만 막후에서는 늘 대화와 모색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정치에서는 정당간 대화가 사라졌다. 옳고 그름을 놓고 싸우는 대신 당리당략을 다투는 데 열심이다.  

한국 정치는 백약이 무효’라는 푸념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치에 대한 무력감이 무한 되풀이되다보니 그게 당연한 걸로 받아들여질까 걱정될 지경이다.  
  
해법이 없는 게 아니다. 어떻게 보면 모두가 대안을 알고 있다. 실천하지 않을 따름이다. 즉, 원내 정당, 정책 중심의 정치가 그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 이른바 ‘차떼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한나라당이 당사를 팔고 천막으로 이동한 이래 정치의 물리적 공간은 정당에서 국회로 이전했다. 지금은 여야 공히 당의 주요 정책을 검토하는 최고위원회의를 국회 본청에 자리한 당 대표실에서 각각 개최한다. 국민의힘은 국민의힘끼리, 민주당은 민주당끼리 따로 모여 회의를 연다. 그리곤 당리당략에 따라 같은 현안에 정반대의 주장과 해석을 쏟아내고, 언론은 두 정당의 발표를 동일한 비중으로 나란히 보도한다. 여야의 주장은 영원한 평행선 아니 정반대로 달린다. 이게 정치에 신물이 나게 되는 매커니즘이다. 
  
그래서 해법이 뭐냐고? 키 포인트는 매일 아침 여와 야를 한 자리에 모으는 것이다. 여야의 주요 당직자들로 하여금 당대표실로 갈 게 아니라, 국회 상임위원회로 가게만 해도 정치의 물줄기는 바뀐다. 상임위(常任委)라고 하는 것은 한자로 상설, 항상 임무를 수행한다는 의미이다. 국회에는 이미 17개 상임위가 정부조직 19부 3처를 감시·감독하도록 구성돼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가 다뤄지고 걸러진다.
  
나라에 현안에 생길 때마다 여야 주요 당직자들이 해당 상임위에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건 어떨까? 이런 구조라면 이슈와 무관하게 엉뚱한 이야기를 하거나 정략적 이해관계에 몰두하기 어렵다. 정책 경쟁이 가능해진다. 진정한 경쟁력을 갖춘 정당, 국민을 중심에 놓고 일하는 정당이라면 매일 아침 국민이 보는 앞에서 진검승부를 펼칠 기회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국회 본청 현관을 통과하면 왼쪽 끝에는 민주당. 오른쪽에는 국민의힘 당대표실이 자리한다. 두 사무실의 거리는 100m가 채 안 될 것이다. 21세기 들어 30년 이상 한국 정치는 이 간극을 좁히는 데 실패했다. 당대표실이 아닌 상임위에서 매일 아침 각 정당이 모여 회의를 연다면 이 거리는 순식간에 사라지게 된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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