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성근위축증(SMA, Spinal Muscular Atrophy)’ 치료제가 국내에 도입된 이후 빠르게 급여 확대가 이뤄졌지만 접근성은 여전히 떨어지는 상황이다. 까다로운 심사 조건 앞에서 탈락되는 환자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SMA 치료제에 대한 급여 적용이 확대된 뒤 사전승인 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 사전심의 결과에 따르면 작년 11~12월 SMA 치료제 신규 투여 신청 14건 중 8건이 불승인됐고, 1건은 자료보완 조치를 받았다. 경구제의 경우 신규 신청 6건이 모두 불승인 판정이 났다. 같은 해 1~10월까지는 불승인 사례가 1건도 없었다. SMA 치료제는 앞서 지난해 10월 급여가 확대 적용됐다. 심평원은 급여 기준 가운데 ‘만 3세 이하 연령제한’ 조건을 삭제했다. 또한 급여 기준을 판단하기 위해 시행하던 운동기능 평가도구도 다양화했다. 이에 따라 환자들은 무증상 환아부터 18세 이전 증상 발현자까지 급여가 확대 적용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치료 접근성은 높아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심평원의 불승인 심의 내용을 살펴보면 제출된 운동기능 평가 결과에서 치료제 투여 전후 점수 변화가 없거나 증상과 징후 발현 시점이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는 사례가 대다수였다. 기존에는 의무기록 외에도 증상 발현 시점을 증명할 수 있는 다양한 증거 자료를 인정했지만, 급여 확대 이후에는 반드시 의무기록을 제출하도록 기준이 강화됐다고 환자단체는 지적한다. 의료기관의 법적 의무기록 보관 기간인 10년이 지나 자료가 폐기됐거나 의료기관 자체가 폐업한 경우도 있어 일부 환자들은 답답함을 토로한다. 아울러 운동기능 개선을 입증하기 위해선 의료진이나 환자가 직접 동영상을 찍어 자료로 제출해야 하는 등 불합리한 구조는 개선되지 않았다는 의견이 잇따랐다.
문종민 한국척수성근위축환우회 이사장은 14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주로 40~50대 환자들이 의무기록을 찾지 못해 급여를 적용 받지 못하고 있다”며 “급여 적용이 가능한 범위는 늘려줬지만 실제 혜택을 받는 환자는 적어 ‘희망 고문’과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 환자는 14세 때부터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의무기록을 보관해왔지만 정식 SMA 진단은 22세에 받아 심사에서 불승인됐다”며 “SMA는 10년 전 만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질환이었고 병원에서도 진단이 쉽지 않았지만 정부는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SMA는 희귀 신경근육계 질환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앉지 못하거나 걸을 수 없는 운동성 장애를 갖게 된다. 발생 시기가 어릴수록 운동 기능을 상실하는 범위가 크다. 현재 치료제로는 바이오젠코리아의 ‘스핀라자’, 한국노바티스의 ‘졸겐스마’, 로슈의 ‘에브리스디’가 있으며, 모두 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급여를 적용받지 못하면 거액의 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최초로 급여가 적용된 스핀라자의 경우 1회 투여 가격이 9235만원이다. 졸겐스마는 1회에 25억원에 이른다.
문 이사장은 “성인 환자들은 급여 기준의 한계로 인해 예전부터 의료비 부담에 허덕여왔고, 치료제 사용을 포기한 사람들도 수두룩하다”며 “급여 기준이 개선된 지금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의무기록을 증명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환자들을 위해 정부가 한시적으로나마 급여 적용 기회를 지원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환자들의 상황에 공감하면서도 재정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청한 대학병원의 한 교수는 “그나마 SMA는 다른 희귀질환과 달리 한국에서 허가된 치료제 모두가 급여로 등재돼 있어 접근성이 좋은 편”이라며 “환자들의 상황은 매우 안타깝지만 워낙 고가의 약제들이다보니 재정 부담을 감안해 급여 기준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또 “제약사가 약가를 인하하는 등 전향적 생각을 하지 않으면 제도를 유지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건강보험이 아닌 별도의 재정을 통한 기금 형태로 운영을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채종희 서울대학교병원 희귀질환센터장(소아청소년과/임상유전체의학과)은 “SMA는 3개 치료제가 모두 한국에서 보험 급여 등재가 돼 개별 환자들의 특성에 맞는 치료제를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채 교수는 “사전승인과 사후 평가 등 제도적 기반이 잘 정착된다면 다른 희귀질환 분야 치료제가 개발됐을 때 긍정적 선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