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즉각 화답하며 ‘전공의 면허정지 행정처분 유연 처리’를 약속했지만, 의료계 반응은 냉랭하다. 의대 교수들의 사직 행렬을 막기엔 역부족인 모습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5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열고 “대통령께서 당과 협의해 전공의 행정처분을 유연하게 처리해달라고 당부했다”면서 “관계 부처가 협의해 의료계와 대화하기 위한 실무 작업에 즉시 착수했다”고 밝혔다.
‘법과 원칙’만을 강조하던 정부의 태도가 바뀐 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요청 때문이다. 한 위원장은 지난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간부와 만나 50분가량 간담회를 가졌다. 이후 한 위원장은 ‘전공의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유연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 위원장의 요청을 수용하고 곧바로 “유연 처리”를 주문했다. 정부가 입장을 반나절 만에 선회한 것이다. 같은 날 오전만 해도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법과 원칙이 있기 때문에 (면허정지) 절차를 밟아나갈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의대 교수들은 정부가 내민 손을 잡지 않는 모양새다. 한 위원장과 만난 전의교협은 “알맹이가 없고 공허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대 교수들의 집단사직도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전국 40개 의대 소속 교수들 대부분은 이날 사직을 결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의교협은 25일 19개 대학이 참여한 성명을 내고 “오늘 사직서를 제출하겠다”며 “책임을 맡은 환자 진료를 마친 뒤 교수직을 던지고 수련병원과 대학을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고려대의료원 산하 3개 병원(안암·구로·안산)은 이날 온라인 총회를 연 뒤 단체로 사직서를 냈다. 서울아산병원과 울산대병원, 강릉아산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두고 있는 울산대 의대도 이날 교수 433명이 무더기로 사표를 던졌다. 연세대 의대 교수들도 이날 저녁 의대학장에게 사직서를 잇따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25일 쿠키뉴스에 “오늘 사직서를 냈다”며 “학생과 전공의를 제대로 길러낼 수 없다면 굳이 대학병원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털어놨다. 이어 “정부는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소통하겠다고 하면서 왜 유독 그 2000명은 그리도 집착하고 고수하려는 건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다른 대학병원 교수도 “한 달 넘게 강경대응 기조를 보여줬으면서, 한 위원장이 한 번 유연 처리를 요청했다고 의료계 분위기가 바뀌는 것이 이상한 것 아닌가”라며 “환자들이 있기 때문에 교수들이 당장 뛰쳐나가기는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만두는 교수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병원장이 허가해줄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교수들이 사직서를 내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정부의 ‘유연 처리’ 방침에 대해서는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며 전공의들이 실망해서 나간 거지, 처벌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진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