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생계를 위해 재취업했더니 통장에 찍힌 국민연금 수령액이 줄었다면, ‘재직자 노령연금 감액 제도’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연금당국에 따르면 퇴직 후 발생한 소득 영향으로 연금이 삭감된 가입자가 11만여명에 달한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이 제도의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제도 개선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9일 ‘재직자 노령연금 감액 제도’에 대해 알아봤다.
1988년 도입된 ‘재직자 노령연금 감액’…소득 298만원 기준
‘재직자 노령연금 감액 제도’는 연금 수급 시점 이후 일정 기준 이상의 임대·사업·근로 소득이 생기면 금액 수준에 비례해 노령연금을 깎는 제도다. 국민연금 제도가 처음 생긴 지난 1988년 도입됐다. 누군가에게 ‘과잉 소득’이 몰리는 것을 막고 재정을 안정시키려는 취지다.
전체 가입자의 3년간 평균소득 월액(A값)보다 소득이 더 많이 생기면, 연금이 삭감된다. 올해 A값은 298만9237원이다. 국민연금 수령액이 많든 적든, 이를 넘으면 최대 절반까지 감액된다. 적게는 10원, 많게는 100만원 넘게 깎이기도 한다. 감액 기간은 최대 5년인데, 연금 수급 개시 연령 상향 조정(60세→65세, 2024년 현재는 63세)에 따라 출생 연도별로 차이가 있다.
은퇴 후 소득이 생겨 연금 수령액이 삭감된 가입자는 11만여명이다. 최혜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해 국민연금공단에서 받은 ‘소득 활동에 따른 노령연금 적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1만799명의 연금액이 이 제도를 통해 삭감됐다. 이는 전체 노령연금 수급자 544만7086명 중 2.03%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들이 지난해 감액 당한 연금액은 총 2167억7800만원에 이른다.
말로만 “폐지 추진”…9개월째 감감무소식
‘재직자 노령연금 감액 제도’에 반발하는 연금 가입자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은퇴 후에도 생업 전선에 나가는 건강한 고령자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재취업을 하면 연금을 깎는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제도가 도입된 36년 전(1988년)보다 평균 수명이 크게 늘어났고 국민연금만으론 생활 유지가 어려운 가운데 과거에 만든 제도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비슷한 제도를 운영 중인 일본은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도쿄신문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65세 이후 임금 합계액과 연금액을 합쳐 50만엔(한화 약 442만원)을 넘으면 연금 지급액을 줄이고 있는데, 이 감액 제도가 고령자 취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고 제도 폐지나 감액 규모 축소 등을 논의해 연내 결론을 내리겠다고 지난 7월 발표했다.
한국 정부도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공개하며 연금개혁 과정에서 ‘재직자 노령연금 감액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전했다. 노후 소득을 보장하고 고령자의 경제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함이다. 운영계획안을 발표한 지 9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구체적인 후속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도를 조속히 폐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위원(한국연금학회 전 회장)은 “국민연금 지급 금액도 크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연금을 감액하는 건 적절치 않다”라며 “재정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불합리한 제도는 폐지하는 것이 맞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제도 폐지를 권고했다”고 말했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고령자 취업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 폐지가 필요하다”며 “일각에선 감액 대상이 (298만원 이상의 소득이 있는) 근로 조건이 나쁘지 않은 분들인데, 제도를 폐지해 연금액을 더 주는 것이 맞냐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제도 폐지로 고령자 취업이 활성화된다면, 이들이 낸 세금을 통해 저소득 가입자 지원에 사용될 수 있어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