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낳은 아이, 내 손으로 키우고 싶어요.” 전모(남·30)씨는 주변에서 조부모나 베이비시터 등 아이를 맡길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출산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전했다. 전씨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유연근무제’를 꼽았다.
18년간 380조 원의 예산에도 출산율이 반등하지 않는 이유로는 낮은 체감도가 지목된다. 아이를 직접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 입장에서 ‘일과 가정 양립’ 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전씨는 지난 12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출산계획을 세울 때 가장 고려하는 것은 일과 양육을 함께 할 수 있느냐이다”라며 “아빠들도 육아 기간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하면서 양육할 수 있는 제도와 이를 눈치 보지 않으며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문화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 5월 실시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정부 대책 중 저출산 문제 해결에 가장 도움이 되는 정책으로 꼽힌 것은 양육 시간 지원(81.9%)이었다. 특히 여성들은 결혼 후에도 일에 열중할 수 있는 조건(72.7%)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체감도 높은 출산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육아친화적인 근무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이대로면 망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4·10 총선에서 여야 모두 저출산 문제 대응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여야는 ‘패키지 정책’으로 종합적인 대응책을 제시했다.
국민의힘은 저출산 원인을 ‘육아 부담 격차’와 ‘노동 환경’으로 진단하고, 이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맞벌이 부모를 기준으로 기업 우회 지원을 통해 양육자가 겪는 불이익을 최소화하고 ‘일·가정 양립’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의 대체인력 확보를 위해 부모가 아닌 대체인력 근로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육아 동료수당’을 신설해 육아휴직을 쓴 근로자의 업무를 직장동료가 대신 처리할 경우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방침이다.
부모의 육아 부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출산휴가를 ‘아이 맞이 엄마휴가’, 배우자 출산휴가를 ‘아이 맞이 아빠휴가’로 개명하고 아빠휴가 1개월을 유급 의무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집권 여당으로서 정부의 인구전략기획부 신설 계획에 따라 저출생대응특별회계 신설 등 정책 개선안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생애 주기에 맞춘 다면적이고 보편적인 지원을 통한 ‘사회구조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결혼·출생·양육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종합적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모든 신혼부부에게 가구당 10년 만기로 1억 원을 대출해 주고, 출생 자녀 수에 따라 원리금을 차등 감면하는 방식의 공약을 제안했다. 아동수당과 자립펀드 등을 통해 총 1억 원의 혜택을 주는 내용도 담겼다.
아이를 가진 전 국민에게 출산휴가(급여)와 육아휴직(급여)을 보장하도록 하는 노동환경 개선 방안도 마련했다. 중소기업 근로자에게는 워라밸 프리미엄을 도입해 월 50만 원씩 추가 지원하겠다고 했다.
여야가 저출산 원인 진단에 따라 획기적이고 과감한 ‘종합 패키지 정책’을 제시한 것에 대해서는 고무적 변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여야 모두 저출산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 법안이 일부 발의됐지만 본회의에서 실제 통과된 법안은 0건이다.
21대 국회에서도 성과라고 할 만한 입법 활동이 없었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저출산 관련 법안 220건 중 단 3.2%만 통과됐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저출산 관련 남녀고용평등법,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개정안 220건 중 단 7건만이 21대 국회에서 개정됐다. 2023년에는 관련 법안이 단 1건도 처리되지 못했다.
특별위원회도 유명무실해졌다. 21대 국회에서 저출산 문제 등을 다루기 위해 국회 인구위기특별위원회가 설치됐으나 4번 회의만 하고 활동이 중단됐다. 22대에서는 정쟁에 밀려 구성 논의 조차 밀려나고 있다. 박찬대 민주당 당대표 권한대행 및 원내대표가 지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인구특위 구성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지만 국민의힘에선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인구전략기획부 신설을 발표했다. 기존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보다 강화된 정책 조정과 예산 배분 권한을 갖는다. 부총리급 인사가 직접 책임을 지면서 정책 추진에 명확한 책임 소재를 부여하고 정책의 일관성을 높일 수 있다.
최윤경 육아정책연구소 본부장은 “강력한 정책 실행 체계를 만든 것에 더해 국회와 부처 간 협력 등을 통해 실행력을 제고시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석재은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 교수는 “인구부 설치 등으로 체계를 갖췄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며 “저출산과 관련해 효용성을 높여나갈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꾸준히 평가하면서 피드백을 해 나가는 과정들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