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지수는 통신주와 주요 은행주들이 빠지면서 의아할 정도로 이상하게 나왔다. 원초적으로 지수를 만드는 기술적인 능력이 없는 건지 의심될 정도다. 올해 하반기 주식 시장을 움직일 만큼 대형 테마였으나, 실망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의 핵심 과제인 밸류업 프로그램이 흔들리고 있다. 밸류업 지수 선정이 잘못됐단 지적이 일파만파 확산되는 영향이다. 거래소의 지수 개발 역량에 의문이 제기되는 동시에 정은보 거래소 이사장의 대규모 임원진 물갈이가 오판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거래소는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시장에 공개했다. 지수에는 기업가치 제고에 적극 노력하거나 향후 가치성장이 기대되는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시장 상장 기업 등 총합 100개 종목을 담았다.
그러나 첫걸음부터 방향성을 상실했단 평가가 주를 이룬다. 앞서 시장에서 편입 종목으로 예상한 KB·하나금융 등 금융지주 종목들이 대거 제외된 탓이다. 반면 성장성에 대한 높은 불확실성으로 주가 부양 기대감이 적은 엔씨소프트나 물적 분할로 주주들과 갈등을 빚은 DB하이텍 등이 지수에 포함됐다. 시장에서 이를 두고 이해할 수 없단 목소리가 높다.
홍콩계 투자은행 CLSA는 “밸류업 지수 구성 종목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서 “투자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구성 종목을 바꾸지 않는다면, 관련 ETF로의 자금 유입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의 한 직원은 “밸류업 지수가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거래소가 빨리 깨닫길 바란다”면서 “종목 100개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고 꼬집었다.
이에 거래소는 지난 26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밸류업 지수 발표 이후 불거진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가장 큰 논란을 불러온 대표적인 밸류업 종목인 KB․하나금융의 지수 제외에 대해 각각 자기자본이익률(ROE), 주가순자산비율(PBR)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거래소의 해명은 오히려 논란을 가중했다. SK하이닉스가 지난 2022년과 2023년 총합 9209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해 2년 합산 흑자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는데도 지수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KB금융과 신한지주가 지수 편입이 불발된 것과 비교해 형평성이 어긋나서다.
거래소는 “산업 및 시장 대표성과 지수 내 비중(15%), 최근 실적 및 전망치, 업계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수 잔류를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지수의 연속성 및 안정성 유지를 위해 영향도가 큰 종목은 특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밸류업 지수 발표 당시에는 숨기고 있던 특례제도를 투자자들의 질타에 어쩔 수 없이 공개한 것으로 추정된다.
밸류업 추진동력 확보 위한 임원진 물갈이, 악재로 작용했나
거래소가 지난 5월 밸류업 공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을 시점만 해도 예상보다 체계적으로 구성된 점과 재무적·비재무적 지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주주환원을 판단하겠다는 입장이 기대감을 키운 바 있다. 그러나 밸류업 지수가 공개되자 가이드라인에 비해 체계적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시장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모호해 시장의 실망감이 크다.
이는 올해 2월 취임한 정은보 거래소 이사장이 제시한 거래소의 운영 방향과도 상충한다. 윤석열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선 밸류업 지수와 같은 거래소의 역할이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취임 당시 포부와는 정반대의 흐름을 보여서다. 정 이사장은 취임사에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의 성공을 위해서는 거래소가 중심을 잡고 뚝심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래소가 중심을 잡은 밸류업 계획이 출발점부터 어긋난 셈이다.
일각에서는 정 이사장이 취임 이후 단행한 대대적인 임원진 물갈이가 악영향을 준 것으로 본다. 정 이사장은 지난 4월5일 취임 이후 상무급 이상 집행간부 11명 중 7명(63.6%)을 신임으로 채우는 파격적인 첫 인사를 단행했다. 당시 거래소는 “기업 밸류업 지원 사업 등 중점 추진사업의 동력을 확보하고, 세대교체를 통해 조직의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밸류업 지수가 이렇게까지 실망스럽게 나올 줄 전혀 몰랐다. 거래소가 지수를 만드는 일을 안 하던 것도 아니고, 시장에서는 전문성을 많이 기대했는데 의아할 정도로 예상과 다른 결과다”라면서 “이상할 정도로 의아하게 나왔다는 것은 지난번 거래소가 단행한 임원진 인력의 대폭 교체가 아주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사안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이사장은 과거 금융감독원장 재직 시절에도 대규모 임원진 교체를 추진한 바 있다. 지난 2021년 그는 부원장 4명 중 3명을 교체하고 부원장보 이상 임원 14명에게 일괄사표를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일부 임원들이 사표 제출을 거부하고 반발하면서 내홍이 발생했다. 조직관리 능력에 한계를 드러낸 사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거래소가 밸류업 지수 발표 이후 연내 리밸런싱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자신들이 실수했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며 “주주 친화적인 움직임이 많이 나오도록 하기 위한 게 밸류업인데, 그런 취지임에도 불구하고 지수 발표 이후 밸류 다운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시장에서도 실망을 많이 하는 모습들이 포착되고 있어 세부적인 조정들을 계속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거래소 관계자는 “향후 밸류업 지수 운영과 관련해 시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할 계획”이라며 “임원진 인사 단행이 밸류업 지수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사실과 관계가 없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