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공백 및 갈등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여야의정 협의체’가 의료계 단체의 이탈에 따라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좌초됐다. 지난 11월11일 출범한 지 20여일 만이다.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는 1일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협의체는 당분간 공식 회의를 중단하고 휴지기를 갖기로 했다.
여야의정 협의체는 의정갈등 이후 처음 생긴 정부와 의료계 간 공식 협상 창구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지만, 대한의사협회와 전공의 등이 참여하지 않아 ‘반쪽짜리 협의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협의체에 참여한 대한의학회와 KAMC는 병원과 학교를 떠난 전공의·의대생의 복귀를 유도하기 위해 내년도 의대 정원 증원 조정을 요구해 왔지만, 받아들여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내부적으로 ‘협의체 무용론’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두 단체는 협의체 참여 조건으로 △수업을 거부 중인 의대생 휴학 승인 △의대 정원 재논의 및 의사 인력 추계 기구 입법화를 위한 구체적 시행계획과 로드맵 설정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부는 입시 혼란과 수험생 피해 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2026학년도 의대 정원 협의 가능성만 열어두고 있다.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협의체 회의 후 브리핑에서 “의료계가 2025년도 의대 정원 변경을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지만, 입시가 상당히 진행된 상황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였다”며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협의체 대표들은 당분간 공식적 회의를 중단하고 휴지기를 갖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어 “합의된 회의 재개 날짜는 없다”면서 “휴지기 동안 정부와 여당은 의료계와 대화를 지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와 여당이 ‘휴지기’에 방점을 찍은 반면 의료계는 사실상 ‘참여 중단’이라는 입장이다. 이진우 의학회장은 “더 이상의 협의가 의미가 없고, 정부와 여당이 이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의학회와 KAMC는 협의체 참여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참담한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급박한 현실에서 유연한 정책 결정을 통해 의정 사태 해결 의지를 조금이라도 보여달라고 간절히 요청했으나 정부는 어떠한 유연성도 보이지 않았다”라며 “여당은 해결을 위해 정부를 적극적으로 압박하거나 중재에 나서지 않아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했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조정은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의료계의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며 2026학년도 증원 여부를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에서 논의하자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025학년도 입학 정원과 관련해 현재 입시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정부가 혼란을 초래하는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은 수험생을 비롯한 교육 현장에 막대한 부담 주기 때문에 불가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