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실손보험 개편안 이번주 윤곽…의료현장 지각변동 예고

비급여·실손보험 개편안 이번주 윤곽…의료현장 지각변동 예고

기사승인 2025-01-06 13:04:18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무분별한 의료 소비를 막기 위한 비급여·실손보험 개편안이 이번 주에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도수치료 등 과잉 비급여 항목을 ‘관리 급여’로 신설하고, 비중증 질환의 보장 한도를 축소하는 방안 등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6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는 오는 9일 토론회를 열고 비급여·실손보험 개편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개편안은 정부가 추진하는 2차 의료개혁 중 하나다. 의개특위는 급여·비급여 혼합진료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고, 고가의 과잉 비급여 진료와 비중증 보장을 축소한 5세대 실손보험을 출시하는 내용 등을 담을 예정이다. 

비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으로 환자가 전액 부담하기 때문에 비용이나 시행 건수를 파악할 방법이 없어 의료 사각지대였다. 비급여 진료는 의사가 부르는 게 값이다. 표준화된 기준이 없어 병원들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이 때문에 비급여 진료는 의사들의 과잉 진료를 부추겨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필수의료 의사들의 이탈을 촉진해 지역·필수의료체계를 붕괴시키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받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4년 상반기 비급여 보고자료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분 1068개 비급여 보고항목의 진료비 규모는 총 1조8869억원으로 나타났다. 의과 분야에서 진료비 규모가 가장 큰 분야는 도수치료로 1208억원을 기록했다. 근골격계 질환 체외충격파치료 진료비는 700억원으로 집계됐다.

보건복지부 전경. 사진=박효상 기자

관리급여 도입 및 혼합진료 제한 방안 유력

이에 정부는 현행 선별급여 제도 안에 의료비 지출 규모가 큰 주요 비급여 항목들을 ‘관리급여’로 지정해 환자 부담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선별급여란 치료 효과가 불확실한 진료 등에 대해 임상 효과가 검증될 때까지 임시로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인 선별급여엔 환자부담률 50~90%가 적용된다. 관리급여로 지정해 도수치료 등 고가의 비급여 진료 가격을 통제하면서 본인부담률을 90% 이상으로 높여 과다 이용을 제한하겠다는 취지다.

일부 항목에 대한 혼합진료 금지도 추진한다. 치료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과도하게 이뤄지는 비중증·과잉공급 질환을 집중 관리해 의료비 지출을 줄이겠단 의도로 풀이된다. 혼합진료는 비싸거나 크게 필요치 않은 비중증 과잉 비급여 진료를 급여 진료에 끼워 치료하는 행태를 일컫는다. 가령 백내장 수술을 할 때 비급여인 다초점렌즈 수술을 하도록 한다거나, 급여가 적용되는 물리치료를 하면서 비급여인 도수치료를 유도하는 식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혼합진료가 늘면서 백내장 치료에 들어간 건강보험 진료비가 연간 1600억원에 달한다.

비중증 질환에 대한 보장 한도를 축소하는 5세대 실손보험 도입도 추진한다. 1~2세대 실손보험은 비급여에 대한 보장이 커서 의료비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정부는 1~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들에게 일정 보상금을 주고 새로운 실손보험 가입을 유도할 계획이다. 비중증 질환의 보상 한도가 줄고, 국민건강보험 급여 항목의 본인부담금 보상 비율도 감소할 전망이다. 현재 실손보험의 평균 본인부담률은 20~30%로, 개편안이 확정되면 환자 부담이 4배 이상 늘어날 수 있다.

시민 84% “비급여 가격 제어 필요”…의료계 반발 예상

정부가 비급여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높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병원 비급여 가격 실태 및 합리화 방안 이용자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9월 기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비급여 진료비 정보를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도수치료는 병원급에서 가장 비용이 비싼 곳이 50만원, 가장 저렴한 곳이 8000원으로 그 차이가 62.5배까지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액 면에서 기관별로 격차가 가장 큰 시술은 경피적 경막외강신경술이었다. 병원급에서 최고 380만원, 최소 20만원으로 360만원(19배)의 가격 차이가 났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과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병원마다 비급여 가격 차이가 크게 발생하는 부분에 대해 시민들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경실련이 지난해 10월 비급여 가격 합리화 방안과 관련해 성인 10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5%는 비급여 가격 차이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84%는 비급여 가격을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인식했으며, 정부가 비급여 진료비 권장가격을 제시할 경우 참고해 이용하겠다는 응답도 87%로 높았다.

비급여 가격 관리 정책 중에선 정부가 상한 가격을 정하고 범위 안에서 결정하는 방안이 54%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정부가 건강보험처럼 가격을 정해야 한다는 응답은 43%, 유사한 급여 치료재료 가격을 기반으로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은 35%, 건강보험과 혼합진료 시 사전 가격을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은 25%로 나왔다.

경실련은 비급여 전체 항목 보고를 의무화하고 명칭 표준화 및 목록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피력했다. 실효성 있는 비급여 모니터링 방안, 비급여 표준가격제·가격상한제 도입에 대한 필요성도 강조했다. 경실련은 “정부가 치료 목적이 분명한 비급여에 대한 급여화 또는 가격 관리를 통해 국민 의료비 부담을 낮추고, 불필요한 비급여의 경우 혼합진료를 금지하지 않는다면 의료기관의 수익창출 수단으로 전락한 과잉 비급여 진료를 방지하기 어렵고 붕괴된 필수의료를 살릴 수 없다”고 짚었다.

문제는 의료계의 반발이다. 해를 넘긴 의정갈등 상황에서 2차 의료개혁 방안은 갈등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4일 대한의사협회(의협) 제43대 회장 보궐선거 1차 투표 결과 2위로 결선에 오른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전 의협 회장)는 입장문을 통해 “실손보험 본인부담률 강제 인상과 비급여 통제는 국민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조치이며, 급여와 비급여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건강보험 시스템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다”라며 “비급여 의료행위는 정부가 관여할 수 없는 영역에 해당되고, 어디까지나 의료기관과 의료 소비자 사이에서 이뤄지는 사적 계약의 영역으로 국가가 이에 개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 조치의 위헌성이나 정당성 여부를 떠나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급여 항목의 수가가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앞장서서 비급여 의료행위를 통제해버리면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은 곧바로 붕괴한다”고 덧붙였다.

의료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의료개혁 의지는 확고하다. 정부는 비급여 보고자료 분석 결과를 포함해 비급여 항목별 가격 및 총진료비, 비급여 의료행위의 안전성·유효성 평가 결과 등 다양한 비급여 관련 정보를 (가칭)비급여 통합 포털을 통해 종합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권병기 복지부 필수의료지원관은 “지난해 처음 시행한 비급여 보고제도가 전체 의료기관의 적극적인 협조로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있다”며 “현재 전문가 등과 비급여 보고제도 확대를 비롯한 비급여 관리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필수의료를 강화하는 의료체계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개혁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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