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일 오후 10시25분 윤석열 대통령은 긴급 브리핑을 통해 야당의 감사원장 탄핵, 예산안 단독 처리 등을 거론하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79년 이후 45년 만의 계엄령이었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국회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국회에 진입하려는 계엄군과 국회 사이에서 시민과 국회 직원들의 육탄전이 벌어졌다. 이들의 저항으로 계엄군의 국회 진입은 늦어지고 실패했다. 국회의원들은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담을 넘어 국회에 진입했다.
여야 국회의원 190명은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비상계엄 선포부터 해제 국회 의결까지, 약 2시간20분 만에 속전속결로 사태가 해결된 셈이다. 그리고 11일 만에 탄핵소추가 이뤄졌다. 시민의 힘이었다. 탄핵에 찬성 또는 반대일지언정 국민이 부여한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요구였다.
국민의 힘 덕분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경찰, 검찰은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자들을 수사할 수 있게 됐다. 국민의 관심은 이제 이들 기관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는 과정에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터진 지 한 달. 정국을 혼돈에 몰아넣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공수처는 지난달 18일 검경으로부터 윤 대통령 수사를 이첩 받은 후 무기력한 모습으로 비판의 중심에 섰다. 지난달 31일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받은 공수처는 나흘 만인 이달 3일 1차 집행에 나섰다가 경호처와 5시간여만의 대치 끝에 실패했다. 체포를 둘러싼 적법성 논란은 사실상 끝난 상태였다. 법원이 체포영장 집행에 대한 윤 대통령 측의 이의신청을 기각하면서다.
공수처는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6일까지 영장 집행 기간 중 한 차례 집행을 시도했다. 그마저 대통령 관저 앞 200m 지점에서 경호 인력 200명의 스크럼에 무너졌다. “그 정도 저항은 생각 못 했다”는 공수처의 해명은, 지난달 3일 맨몸으로 계엄군 앞에 섰던 국민에게 통할 리 만무하다.
이에 더해 공수처는 지난 3일 영장 집행 실패에 이어 경찰에 체포영장 집행 일임을 요청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하는 황당한 행태도 보였다. 수사기관의 헛발질은 단순히 시간만 허비하는 것이 아니다. 3일 첫 체포 시도 무산 후 관저 입구에는 철조망이 새롭게 설치되고 차벽도 추가됐다. ‘계엄이 문제라도 탄핵은 막아야 한다’라며 윤 대통령 지지층은 결집했다. 국론 분열은 극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러한 혼란을 멈추기 위해 수사기관은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 공수처에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 법원이 윤 대통령에 대해 공수처가 재청구한 내란수괴 혐의 체포영장을 발부해 유효기간을 연장하면서다. 1차 체포영장 실패 후 ‘무능과 의지 부족’이란 비판을 지울 기회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차 영장 집행이 마지막 영장 집행이라는 비장한 각오로 철두철미하게 준비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공조본 차원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달로 출범 4년을 맞은 공수처가 더 이상 무용론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선 ‘다음’은 없다는 각오로, 실체 규명을 위한 수사 속도를 높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