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때마다 울었어요. 아직 구덕이를 못 버렸습니다.” 배우 임지연은 아직 구덕이를 놓지 못했다. 다시 도전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사극에서 운명처럼 만난 인물이었고, 대사 하나하나도 애정 없이 뱉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자신의 바람대로 ‘임지연 표 사극’을 완성했다. 이토록 사랑했으니 이별이 힘들 법하다.
23일 서울 성동구 한 카페에서 만난 임지연은 “많은 사랑을 받아서 행복하다”며 “안 끝났으면 싶은 마음인데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고 소회를 전했다.
임지연은 26일 종영한 JTBC 토일드라마 ‘옥씨부인전’에서 옥태영(손나은)의 꿈인 외지부로 살면서 청수현을 먹여 살린 구덕 역을 맡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의 악녀 박연진으로 전성기를 맞은 그의 차기작이 사극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더 글로리’로 사랑을 받고 처음으로 제안이 많이 오던 시점이었어요. 그때 먼저 받은 대본이 ‘옥씨부인전’이었는데 자신이 없었어요. 솔직히 ‘왜 하필 사극 대본이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근데 우연히 대본을 봤는데 구덕이라는 인물이 너무 좋은 거예요. ‘아차’ 싶더라고요. ‘나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모습이라도, 무섭고 두려워도 도전하는 맛으로 배우로 사는 사람인데, 왜 이 장르를 배제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창피하기도 했어요.”
앞선 실패 경험으로 사극에서 도망치려고도 했지만, 출연을 결심하면서는 단단히 각오를 다졌다. “‘한번 보여주자. 난 항상 어려운 인물도 도전했던 애니까 가장 자신 없는 사극을 해보자. 이왕 하는 거 ’임지연 표 사극이네‘라는 말을 듣자’ 했어요. 사극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기술적인 부분에서 노력하면 분명히 알아봐 주실 것이라고 믿고 과감하게 도전한 거죠.”
쉽지만은 않았다. 스스로 한복이 어울리지 않고, 사극에 적합한 발성이 아니라는 편견을 깨야만 했다. 특히 이번 작품은 타이틀롤이어서 책임감도 남달랐다. “가끔 후회하기도 했어요. 너무 힘들었거든요. 하지만 모두가 나를 믿게끔 만드는 현장에서의 태도가 중요했던 것 같아요. 재판 신 같은 경우 잘라서 찍어도 되지만, 공연하듯이 완벽히 해내고 싶었어요. 처음 느껴보는 책임감이었어요. 작품을 끌고 가는 부분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덕분에 장르 트라우마를 극복한 것 같습니다.”
‘옥씨부인전’은 어떠한 풍파에도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강인한 여성의 이야기지만, 신분을 뛰어넘는 애틋한 로맨스물이기도 하다. 임지연은 정인 구덕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로맨티스트 천승휘(송서인)로 분한 추영우와 호흡을 맞췄다. 이들의 훌륭한 케미스트리는 작품이 갖는 가장 큰 힘이었다. 임지연은 “제가 의지를 많이 했다”며 추영우를 치켜세웠다.
“제가 선배님들을 따라가는 입장에 있었다 보니 처음에는 어려웠어요. ‘옥씨부인전’ 멜로 라인은 너무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같이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도와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반대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추)영우는 자기만의 색깔로 캐릭터를 분석하는 능력이 굉장해요. 경력이 오래되지 않았는데 놀라울 정도로 능청스럽고 태연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치밀하게 계산하고 분석하면서 대본을 파고 있는 시간이 긴데, 영우는 자유롭더라고요. 그게 너무 천승휘랑 잘 어울렸어요.”
악랄하고 집요한 성정을 지닌 구덕의 주인 김소혜(하율리)도 빼놓을 수 없는 이야깃거리다. 특히 구덕과 김소혜가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 가슴을 졸이다가도 ‘구덕이 연진이었으니 안심된다’는 반응이 많았다. 폭 넓은 캐릭터 스펙트럼의 임지연, 치 떨리는 악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하율리가 함께 만든 드라마의 묘미였다.
“너무 재밌었어요. ‘연진아, 보여줘’ 이러시더라고요(웃음). 소혜 캐릭터가 쉽지 않은데 처음 구덕이로 봤을 때 ‘저 친구 너무 잘하겠다’ 했어요. 다시 등장했을 때는 최고의 빌런이 될 거라고 확신했고요. 아직도 연진이 얘기가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기도 하고 좀 당연해진 것 같아요. 앞으로도 연진이라고 많이 불러주시면 좋겠어요.”
많은 관심 속 ‘옥씨부인전’을 마친 임지연은 또 다른 도전에 나설 예정이다. “도전 의식이 불타는 작품을 고르는 편이에요. 저도 10년 넘게 일을 하다 보니 스스로 잘하는 게 뭔지 알 것 같거든요. 근데 명확한 답이 그려지는 대본은 안 끌려요. ‘어떡하지? 뭐지? 이게 뭘까? 나 이거 왜 한다고 했지? 같은 생각이 들면 재밌어요. 미션을 클리어하듯 작품에 임하는 게 배우로서 가장 큰 기쁨이고 원동력입니다. 앞으로는 시대극에 도전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워낙 무거운 작품을 많이 했기 때문에 가볍고 유쾌한 코미디도 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