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60년 전 제시된 루팅거 액체이론은 세계 최초로 실험으로 증명하며 대규모 양자소자기술 개발 가능성의 전기를 마련했다.
루팅거 액체이론은 1차원 전자계에서 전자 간 강한 상호작용으로 전도 특성을 나타내는 현상을 설명한다. 이 이론은 1차원 물질에서 전자의 흐름이 전통적 금속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과 전자 상호작용이 물질의 전기적 특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제시해 전자 상관효과가 중요한 저차원 시스템의 물리적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핵심 역할을 제시한다.
대규모 양자소자기술 개발 길 열어
기초과학연구원(IBS) 반데르발스양자물질연구단 조문호 단장과 하버드대 박홍근 교수 공동연구팀이 루팅거 액체이론을 세계 최초로 실험으로 증명했다.
연구팀은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의 폭을 가진 1차원 양자금속을 구현하는 것에 세계 최초 성공했고, 그 안에서 강한 전자 상호작용으로 유발되는 독특한 전자 수송현상을 규명했다.
이는 좁은 골목길을 여러 차량이 일렬로 줄지어 통과하는 경우 뒤차는 앞차를 앞질러 갈 수 없고 서로 안전거리를 두며 서행하는 것처럼 1차원 금속 내 전자도 이와 같은 상황을 겪는다.
3차원 또는 2차원 공간의 자유전자와 달리 1차원에 속박된 전자가 인접하며 서로 강한 상호작용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1차원 금속은 전자가 1차원 공간 내에서 움직일 수 있는 전도 경로를 갖는 금속으로, 전자운동이 1차원적 공간에서 제한되는 물리적 특성을 루팅거 액체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루팅거 액체이론은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실체적 물질이 없어 그동안 관련 연구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연구팀은 이황화몰리브덴의 독특한 구조를 활용해 1차원 금속 구현에 성공했다.
이황화몰리브덴은 몰리브덴원자 하나에 황원자가 두 개 붙은 층상구조 화합물로, 단일층에서 1.8eV의 밴드갭 에너지를 갖고, 두 결정이 만나 형성되는 결정립계는 폭 0.4㎚에 불과하다.
연구팀은 결정립계 중 금속성을 갖는 독특한 성질의 거울쌍정경계(mirror twin boundary, MTB)에 주목했다. 거울쌍정경계는 서로 거울 대칭인 두 결정립이 만나 형성되며, 거울쌍정경계를 기준으로 한쪽 영역의 원자배열이 다른 쪽 원자배열과 거울상을 이룬다.
실제 연구팀은 사파이어 기판 위에 이황화몰리브덴을 성장시켜 의도적으로 이황화몰리브덴 거울쌍정경계를 수십 ㎛ 길이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이 경계가 전자 수송역할을 하는 소자를 제작해 극저온부터 실온까지 루팅거 액체이론을 따르는 안정적 1차원 전자계임을 확인했다. 이는 대규모 양자소자기술 개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연구팀은 경계 내 점결함이 전자수송현상에 미치는 영향도 규명했다. 점결함은 물질 구조에서 원자나 이온이 결여됐거나 잘못 배열된 지점으로, 이는 물질의 전기적·기계적 특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특히 전자 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점결함 밀도가 높아질수록 교통체증이 발생하듯 전자 이동속도가 줄고 전자 간 상호작용이 더욱 강해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전자 수송현상이 전자 간 상호작용 세기와 반비례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 단장은“이상적인 1차원 금속을 구현하고 1차원 전자계의 근본적 물리 특성을 규명할 수 있는 실험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라며 “이는 1차원 양자전자시스템 기반의 광범위한 학술 연구와 응용을 가능하게 하는 획기적인 성과로, 차세대 양자소자와 전자기술 개발로 이어질 다양한 가능성을 열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 지난달 27일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