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매도 금지 조치가 전면 재개된 첫날 국내 증시는 급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공매도에 대한 투자자 불안감이 엄습한 가운데 미국발 상호관세와 경기침체 공포 등 대외적 리스크까지 맞물린 여파로 해석된다.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3.00%(76.86p) 급락한 2481.12에 장을 마감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4일 이후 약 두 달 만에 2480대로 후퇴했다. 코스피는 2513.44에 개장한 이후 장중 3.07% 내린 2479.46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이 1조5753억원 순매도하면서 지수 하락을 견인했다. 개인과 기관은 각각 7899억원, 6672억원 순매수했다. 특히 외국인의 코스피 현·선물 순매도 규모는 약 2조5700억원으로 지난달 28일(3조2158억원)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내달 2일 발표될 상호관세 불확실성, 지난주 말 미국 증시 불안을 일으킨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불안, 공매도 재개에 따른 수급 변동성 증폭 등 대내외 악재가 어우러져 스노우볼 효과를 만들어냈다”라고 설명했다.
시가총액 상위 10위권 종목들도 대다수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유가증권시장 시총 1위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대비 3.99% 내린 5만7800원으로 주저앉았다. SK하이닉스(-4.32%), LG에너지솔루션(-6.04%), 삼성바이오로직스(-3.34%), 현대차(-3.80%), 삼성전자우(-4.84%), 기아(-3.15%), 셀트리온(-4.57%), 네이버(-1.90%) 등도 크게 하락했다. KB금융만 0.38% 오른 강보합세로 마감했다.
코스닥도 마찬가지다. 코스닥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3.01%(20.91p) 내린 672.85에 거래를 마쳤다. 기관과 개인은 각각 1477억원, 636억원 순매수했으나, 외국인이 2150억원 순매도했다.
코스닥 시총 상위 10위권 종목들은 알테오젠(0.99%)과 휴젤(0.00%)을 제외하면 모두 떨어졌다. 에코프로비엠(-7.05%), HLB(-3.67%), 에코프로(-12.59%), 레인보우로보틱스(-1.31%), 삼천당제약(-2.37%), 클래시스(-3.26%), 코오롱티슈진(-7.26%), 파마리서치(-1.63%) 등이 크게 하락했다.
이날 급락한 종목들을 살펴보면 2차전지 관련주가 크게 부각된다. 2차전지 업종은 최근 수익성 둔화 우려가 커진 데다, 지난 공매도 금지 기간 주가 상승 폭이 컸던 만큼 단기 하락 압력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이에 공매도 선행지표인 대차잔고도 타 종목 대비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달 26일 기준 에코프로비엠과 에코프로, 포스코퓨처엠 등 2차전지 종목의 대차잔고 비율은 각각 15.36%, 11.73%, 12.63%로 최상단에 위치했다. 아울러 이들 종목은 지난 24일 기준 공매도 잔고도 각각 3.59%, 2.79%, 2.44%로 드러나 추가 하락 여지마저 남아있다. 김민규 KB증권 연구원은 “공매도 잔고가 남아있다는 것은 여전히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있다는 뜻”이라고 진단했다.
증권가 “공매도 재개, 지수 영향은 단기…관세전쟁 타격은 유의”
다만 증권가에서는 국내 증시의 전반적인 하락장은 일시적일 것으로 내다본다. 중장기적으로 공매도에 따른 외국인 수급이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에 기인한다.
통상 외국인 투자자는 공매도를 주로 롱-숏 페어 전략을 구사하는 방편으로 사용한다. 상승 예상 종목을 매수하고, 하락 예상 종목을 공매도하는 전략이다. 아울러 과도하게 상승한 종목이나 실적 악화 예상 종목도 공매도한다. 이같은 전략에 따른 롱-숏 자금이 유입될 경우, 수급 여건에 훈풍을 불어온다.
이웅찬 iM증권 연구원은 “롱-숏 자금이 유입되면서 외국인 거래비중 상승과 시장 유동성 증가가 예상되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공매도 재개 직후 숏 포지션을 다시 구축하는 시기를 지나면, 지수보다 시장 스타일에 영향을 준다. 공매도 재개에 따른 지수 영향은 오늘 하락을 포함해 단기간 내 반영을 마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매도 재개보다 미국발 관세전쟁과 경기 하방 리스크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내달 2일(현지시간) 모든 국가에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상호관세 부과는 증시 변동성을 키우는 부정적 요인이다. 수입규제와 통상마찰이 가중되면서 실적 악화의 요인으로 작용해서다.
여기에 더해 경기 하방 리스크도 위험심리 상승 요인이다. 최근 공개된 미국 2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5% 오르면서 시장 예상을 웃돌았다. 해당 지표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효과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물가 불안감이 확산되는 상황이다. 이미 뉴욕 증시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에 투매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연구원은 “공매도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관세와 미국 경기다. 당장 발표될 상계관세율부터 확인해야 하는데, 한 자릿수 대의 관세율을 기대했던 시장 예상보다 강력하게 시작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협상과 보복은 장기화될 수 있다”며 “관세는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이벤트라기보다는 지지부진한 협상과 분쟁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