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대면진료 법제화를 앞두고 국회에서 발의된 개정안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과도한 제한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전체 이용자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성인층의 초진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형평성과 접근성 모두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진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비대면진료의 정의와 허용 범위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은 비대면진료를 의료기관 밖 환자에 대해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관찰·상담·교육·진단·처방하는 행위로 규정하며, 원칙적으로 재진만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의료기관 접근이 어려운 환자(도서·벽지, 군인, 교정시설 수감자 등) △소아·노인 △1·2급 감염병 환자 △최근 일정 기간 내 대면 진료 경험이 있는 환자에 한해 예외적으로 초진을 허용하도록 했다. 결국 18세 미만, 65세 이상만 초진이 가능하고 19~64세 성인은 재진만 가능하다는 해석이다. 논란이 많았던 약 배송 관련 내용은 제외됐다.
비대면진료 업계는 이번 법안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주요 수요층을 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제도의 중심 이용자인 20~40대가 사실상 제외되면서,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비대면진료 플랫폼 닥터나우에 따르면, 2020년 11월부터 2025년 5월까지 발생한 약 270만건의 이용 중 90.9%가 18~64세 성인층이었고, 이 가운데 20~30대가 약 70%를 차지했다.
한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지난 6년간 잘 작동해온 제도를 명확한 근거 없이 연령 기준으로 제한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현 정부가 추진 중인 네거티브 규제 원칙과도 맞지 않는다”고 제기했다. 이어 “비대면진료는 물리적 한계를 넘는 기술인데, 특정 연령만 허용하는 식이라면 환자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업계는 이번 법안이 기술 발전과 의료 혁신을 억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2023년 재진 중심의 임시 운영 당시에도 여러 플랫폼 기업들이 시장에서 철수한 전례가 있다. 또 다른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이번 법안처럼 대상자를 지나치게 한정하면, 플랫폼 입장에서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유지하기 어렵다”며 “비대면진료는 단순한 진료 수단이 아니라 기술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서비스인데, 제도적으로 발이 묶이면 신규 투자나 인력 확충은커녕 기존 기능조차 유지하기 힘들어진다”고 토로했다.
일상에서 비대면진료를 활용해 온 이용자들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재진만 허용할 경우, 가장 큰 장점인 시간·거리 제약 해소 효과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2025년 2월 발표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응답자의 91.7%가 향후에도 비대면진료를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시간·거리 제약 없이 이용 가능(63.9%) △편리함(15.1%) △비용 절감(14.0%)이 꼽혔다.
회사원 김현지(32세·가명)씨는 “비대면진료는 병원 갈 시간조차 없는 직장인에게 꼭 필요한 제도”라며 “성인 초진을 막아버리면 사실상 아무도 못 쓰게 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용자 최성원(40세·가명)씨는 “코로나19 시절 재진만 허용됐을 때 병원도, 환자도 이용이 불편해 결국 제도가 유명무실해졌던 기억이 난다”며 “이번엔 오히려 약 배송 같은 실효성 있는 내용이 담겼어야 했다”고 언급했다.
반면 의료계는 초진을 강력히 반대하며 환자 안전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12일 브리핑에서 “팬데믹 이후 세계적으로 초진 포함 비대면진료는 대부분 다시 제한하고 있다”며 “18세 미만 환자에서 초진을 허용하는 것은 심각한 환자의 문제를 방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했다. 이어 “비대면진료 도입은 정치적 결정이 아니라 의료적 판단이 우선돼야 하며 정부와 국회는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민의힘은 연령과 진료 단계 구분 없이 비대면진료를 원칙 허용하고, 구체적 기준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위임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야 모두 비대면진료 법제화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이해관계 조율이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