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대병원은 지역거점 병원으로서 진료뿐 아니라 교육, 연구 기능까지 수행해야 하는 삼중 책무를 안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거리가 멀다. 만성적 의료 인력 부족, 턱없이 낮은 인건비, 정원 규제로 인해 운영은 늘 빠듯하고 투자는 제한적이다. 환자의 신뢰를 끌어올리는 데엔 한계가 있다. 오히려 낙후된 이미지가 짙어지고 있다.
문제는 구조에 있다. 국립대병원이 교육부 소관의 대학 부속병원으로 묶여 있는 상황부터 짚어봐야 한다. 병원은 의료기관인데, 교육기관처럼 관리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의 중증·필수 의료를 책임지기 위해 필요한 독립성이나 행정적 유연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의료 체계는 점점 정교해지고 있는데, 국립대병원은 여전히 제도적 틀 안에 갇혀 있다.
정부가 말하는 ‘필수의료 책임 네트워크’를 실현하려면 국립대병원을 공공의료의 중추로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역 병원과의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응급, 외상, 감염 등 필수 분야에서 실질적으로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병원의 문제가 아닌, 지속가능한 의료 체계를 확립하는 국가적 과제이다.
이제 더 이상 국립대병원을 ‘스스로 수익을 내야 하는 공공기관’으로 취급해선 안 될 것이다. 진료와 교육, 연구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정부의 과감한 투자와 제도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 관리 체계를 일원화하고, 인건비를 아우르는 필수 운영에 대해선 안정적 재정을 뒷받침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지역에서 안심하고 아이를 낳고 또 치료 받고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은 국립대병원의 역할을 강화해야 기대할 수 있다. 지역을 살리고, 국가 의료를 안정화하는 길, 지금이 그 전환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