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썸네일은 번쩍이고 제목은 자극적이었다. 순간 우리 회사 유튜브 채널인가 싶어 링크를 눌렀다. 아니었다. 완전히 낯선 채널이었다. 같은 이름, 비슷한 콘셉트, 하지만 전혀 다른 주인. 감쪽같았지만 문제는 없다. 이름이 같다고 해서 모두 침해는 아니다. 법적 권리는 또 다른 영역이다.
유통 기업 세계는 다르다. 이름 하나가 단순한 표식이 아니라 곧바로 매출과 시장 점유율, 브랜드 충성도로 직결된다. 소비자의 기억 속을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에 따라 판도가 갈린다. 그만큼 이름값을 둘러싼 기업들의 싸움은 치열하다.
빙그레 ‘메로나’와 서주 ‘메론바’의 오랜 싸움이 대표적이다. 1992년 빙그레가 등록한 상표 ‘메로나’와 2014년 등장한 ‘메론바’는 제품 발음과 포장지 콘셉트가 닮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논란에 휘말렸다. 빙그레는 자사 브랜드를 흉내 낸 ‘카피(미투) 제품’이라며 소송에 나섰지만, 법정의 판단은 냉정했다. 이름을 비틀고 모양을 흉내 내도 ‘똑같지 않다’는 이유로 빙그레가 패소한 것이다.
핵심은 ‘소비자 혼동 가능성’이었다. 실제로 구매 순간 소비자가 ‘메로나’를 떠올리는지, 아니면 단순히 멜론맛 아이스크림으로 인식하는지를 입증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 때문에 분쟁은 수십 년 동안 이어졌고, 결국 기업들은 변호사를 앞세워 긴 싸움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 공방은 지난달 2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이 빙그레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며 전환점을 맞은 상황이다.
삼양식품도 2014년 ‘불닭볶음면’을 모방했다며 ‘불낙볶음면’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패했다. 법원은 소비자가 두 제품을 혼동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며 기각했다. 해외에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중국 온라인몰에는 ‘불닭’과 발음이 유사한 이름을 달고 포장만 바꾼 모방 제품이 쏟아져 나오지만, 이를 막을 실질적 수단은 거의 없다.
상표는 조금만 비틀어도 빠져나가고, 디자인은 다르면 보호받기 어렵다. 결국 마지막 수단은 부정경쟁방지법이지만, 입증 부담이 크다.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은 감내하겠지만, 중소업체는 버티기 힘들다. 이름값을 지키기 위해 뛰어야 할 소송 마라톤이 너무 길고 험하다. 최근 메로나 판결이 “카피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를 받지만, 구조적 공백을 메우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미주 법무법인 미주 대표 변호사는 “이번 빙그레와 서주의 판결은 법원이 과거보다 부정경쟁행위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소비자 혼동 가능성과 브랜드 인지도를 근거로 전향적으로 판단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입증 부담은 여전히 크고, 대기업은 가능해도 중소업체엔 높은 벽이 남아 있다”며 “법률적 조력이 없으면 보호받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름값은 브랜드의 얼굴이자 자산이다. 브랜드는 신뢰를 만들고, 신뢰는 곧 권력이 된다. 그러나 그 권력은 제도의 빈틈 속에서 생각보다 쉽게 흔들린다. 미투 제품에 대한 소송은 종결될 수 있지만, 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결국 남는 질문은 하나다. 소비자가 믿고 선택한 그 이름값, 법과 제도는 어디까지 지켜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