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km 해상보행로…보라색 착장 무료로 즐기는 참여형 산책
양산해변 바다를 향한 피아노 포토존에서 노을 감상 '핫스폿'
수석 1500점과 정원, 정갈한 분재 수형으로 만끽하는 자연
462만㎡ 염전과 우전해변 4km를 완보…슬로시티의 묘미
기사승인 2025-10-19 19:26:08
1004섬 신안의 가을이 물들어가고 있다. 보랏빛 길과 푸른 바다 위 피아노, 염전의 느린 시간 속에서 신안 여행은 고즈넉하게 흐른다. 복잡한 도심의 속도를 잠시 내려놓고, '쉼이 머무는 곳' 1004섬 신안으로 향해보자. 사진은 안좌면 퍼플섬. /신안군복잡한 도심의 속도를 잠시 내려놓고, '쉼이 머무는 곳' 1004섬 신안으로 향한다.
먼저 소리를 낮춘다. 바람도, 알림도, 핸들 위의 조급함도. 천사대교를 건너는 동안 바다는 금빛에서 자줏빛으로 농도를 바꾸고, 표지판의 화살표는 파도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오늘 마지막 장면을 어디에 둘지 정하면 여행의 절반은 이미 성공이다. 목적지는 지도보다 감각에 가깝다. '빛·소리·시간' 이 세 가지 테마를 따라가면 된다.
보랏빛 길과 푸른 바다 위 피아노, 염전의 느린 시간 속에서 여행은 고즈넉하게 흐른다. 신안의 가을을 들여다본다. 안좌면 퍼플섬 해상보행로. /신안군① 빛의 농도 퍼플섬
퍼플섬의 해상보행로는 약 1.4km. 반월·박지도를 잇는 다리 위에 오르면 난간, 정자, 우체통, 표지까지 한 톤의 보라가 바닷바람과 함께 스며든다.
입장료는 일반 5000원(청소년·군인·어린이는 할인), 다만 보라색 모자·스카프·신발·우산 등 '보라 아이템' 착용 시 무료인 참여형 운영이 특징이다.
보행로 길이는 그리 길지 않지만, 시야는 멀어진다. 드넓게 펼쳐진 갯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보랏빛 섬이 자연 향취를 물씬 전한다.
중앙 정자에 서면 셔터 소리보다 먼저 바람결이 도착하고, 그 바람이 머리칼을 정리해 준 뒤에야 사람과 풍경이 한 프레임에 맞물린다.
권장 타이밍은 일몰 35~40분 전. 역광이 시작될 때 보라 난간을 리드라인으로 세우면 하늘의 색층과 수평선의 주황빛이 자연스럽게 겹친다. 안좌면 퍼플섬 어린왕자 조형물. /신안군매해 이맘때 퍼플섬을 물들이던 보랏빛 꽃 아스타 국화는 올해 폭염·집중호우 여파로 개화가 지연돼 충분히 만개하지 못했지만, 여행의 핵심은 꽃이 아니라 '색채 아이덴티티'와 '보행 경험'이다.
보라 모자나 스카프 하나만 얹어도 사진 속 내가 풍경의 일부가 된다. 자은면 양산해변 피아노 포토존. /신안군② 소리의 방향 자은도 피아노섬
자은도 양산해변 초입에는 바다를 향한 업라이트 피아노 포토존이 놓여 있다.
누군가 건반을 가볍게 두드리면 파도가 반주를 맡고, 바람이 페이지를 넘긴다. 정면의 수평선은 고요하지만, 얇게 번지는 잔물결이 감탄사 대신 리듬을 보낸다.
'피아노섬'이라 불리는 이유는 포토존 때문만이 아니다. 섬 자체가 예술과 자연을 포개어 보도록 설계되어, 보는 각도에 따라 경치가 색다르다.
해가 수평선에 닿기 약 10분 전, 피아노 윗판에 하늘이 얇게 비치며 노을이 '연주되는' 느낌이 완성된다. 자은면 1004뮤지엄파크 조개박물관. /김재환 기자낮엔 1004뮤지엄파크를 천천히 훑자.
국내 최대 조개 고동 전문 박물관인 세계 조개박물관과 신안자생식물 연구원, 오토캠핑장, 자연휴양림 등 즐길거리가 다채롭다. 야외 조각과 식생, 수석과 조개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질감은 기념샷의 한 컷 한 컷 감도를 높인다.
해질녘 다시 해변에 돌아와 피아노 너머로 서서히 저물어가는 붉은 노을을 감상하는 것도 추천한다.
사진을 찍든, 그냥 서 있든, 오늘 여정의 문장부호는 여기서 찍힌다. 바닷바람이 제법 쌀쌀해지는 계절이니 얇은 겉옷과 굽 낮은 신발을 권한다. 자은면 1004뮤지엄파크 수석정원 폭포. /신안군③ 예술과 정원의 프레임 1004뮤지엄파크와 분재공원
자은면 1004뮤지엄파크는 세계조개박물관·1004섬 수석미술관·수석정원·양산해변을 잇는 복합 문화단지다.
유리 빛이 스치는 전시동과 야외 조각, 바람에 흔들리는 식생이 한 화면에서 만나 '자연이 작품을 설명하는' 구도를 만든다.
수석미술관에는 기증 수석 1500여 점이 소장·225점이 전시돼 있고, 수석정원은 거북모양의 기암괴석과 대형수석 2700t, 200여 종의 야생화와 100여그루의 분재 등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무릉도원'을 연상시킨다. 특히 정원 한 가운데서 쏟아지는 폭포는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떠올리게 한다. 압해읍 1004섬 분재공원. /신안군압해읍에 위치한 천사섬 분재공원은 10ha규모의 대형 분재·정원 단지다.
낮은 받침대 위에 올려진 수형들이 단 차를 이루며 줄지어 있고, 나무 한 그루마다 뿌리와 줄기, 잔가지를 손끝으로 다듬은 세월이 겹겹이 쌓여 있다.
한 켠에는 계절에 따라 색이 옅게 바뀌는 수종들이 자리해, 가을빛이 잎 끝부터 천천히 스민다. '크기를 줄였지만 정취는 더 깊어진' 느낌이다. 분재의 재미다.
하나씩 보다 보면 걸음은 자연스레 느려지고, 사진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길어진다. 도시에서 놓치던 정적이 몸에 붙는 느낌이다.
전시관 내부 조형물도 감상하며 공원 곳곳을 거닐면 각양각색의 분재가 만드는 '작은 숲'을 경험할 수 있다. 증도면 태평염전. /신안군④ 시간의 질감 증도 태평염전
증도는 슬로시티 지정지이자 신안 갯벌이 포함된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다.
증도의 태평염전은 조성 면적 약 462만㎡의 국내 대표 천일염단지로, 증발지 표면에 맺힌 소금 결정이 햇살을 쪼개고, 목교 트레일을 걷다 보면 발걸음이 자연스레 느려진다.
이어지는 소금박물관에서 도구와 기록을 훑으면 여행의 속도가 자연스레 내려간다. 여기서는 '많이 보기'보다 '오래 남기기'가 어울린다.
늦은 오후에는 우전해변으로 자리를 옮겨보자.
길이 약 4km의 모래해변 위로 그림자가 서서히 길이를 바꾼다. '슬로시티'라는 타이틀은 표어가 아니라 실제 체감이다.
아이와 손을 잡고 걷기에도, 혼자 생각을 가다듬기에도, 둘이 나란히 앉아 말없이 바다를 보기에도 완벽한 리듬, '천천히(Largo)'에 최적화된 곳이다. 증도면 짱뚱어다리. /신안군마무리는 짱뚱어다리에서 노을 인증샷 한 컷. 이곳의 별미인 소금 아이스크림도 맛보자. 한 스푼, 단맛 전에 오는 짭조름함이 오히려 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