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만 보내고 안 갈래요”…사라지는 ‘축의’ 의미

“5만원만 보내고 안 갈래요”…사라지는 ‘축의’ 의미

식대 6만원 시대, ‘상부상조’ 대신 ‘가성비’만 남았다

기사승인 2025-10-22 06:00:06 업데이트 2025-10-22 07:38:04
그래픽=윤기만 디자이너

결혼식 식대가 치솟으면서 축의금 액수에 대한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성비’를 따지면 차라리 식에 참석하지 않고 5만원만 보내는 것이 낫다라는 인식마저 퍼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축의금 액수 논쟁을 넘어, 과도한 비용이 드는 결혼 문화 자체를 돌아봐야 할 때라고 조언한다.

22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는 “안 가고 5만원만 보내는 게 낫다”, “이제는 돈만 보내는 시대다”, “내가 결혼 안 할 수도 있는데 그냥 축하만 하면 안 되나” 등 축의금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잇따르고 있다.

이같은 인식의 배경에는 급등한 예식 비용이 있다. 한국소비자원의 ‘결혼서비스 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전국 예식장의 1인당 식대 중간값은 처음으로 6만원을 넘어섰다. 지역별로는 △서울 강남 8만8000원 △서울 강북 7만원 △경기·광주 6만2000원 순이었으며, 제주는 4만2000원으로 가장 낮았다. 식대는 전체 결혼 비용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오른 식대에 시민들이 느끼는 부담도 적지 않다. 직장인 김모(30)씨는 “결혼식 사정은 잘 모르지만, 식비보다는 많이 내야 한다는 생각에 기본 10만원을 낸다”고 말했다. 사회초년생 최모(25)씨 역시 “참석하면 식대를 고려해 10만원을 낸다”며 “지난달에만 결혼식이 두 건이라 부담스러운 지출이었다”고 토로했다.

나름의 ‘축의금 기준’을 세운 이들도 있다. 50대 김모씨는 “보통은 10만원, 가까운 친구는 20~30만원, 가족은 30~50만원으로 정해 성의를 표시한다”고 했다. 직장인 나모(31)씨는 “참석하지 않으면 5만원만 내고, 친한 친구에게는 원하는 선물을 고르라며 따로 챙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 뒤에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고 분석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혼례와 장례 등에서 우리 고유의 상부상조 전통이 매우 컸다”며 “과거에는 어려울 때 십시일반 도와주는 문화였고, 부모 세대는 누가 얼마를 냈는지 꼼꼼히 기록하며 관계를 이어왔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지금은 결혼 자체가 너무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구조가 됐다”며 “결혼식을 화려하게 치를수록 부모의 지원이 필수적이고, 그렇게 되면 하객의 식대를 고려한 축의금 문화도 자연히 유지되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주최자와 하객 간의 배려, 그리고 축의금 문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조언도 나왔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산업학과 교수는 “초대하는 사람은 ‘덜 받을 수도 있다’는 마음을, 참석하는 사람은 ‘더 줄 수도 있다’는 여유를 갖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자녀가 받는 축의금 액수로 이어지는 건 일종의 ‘부모 찬스’”라며 “결혼식을 ‘비용 회수 행사’로 여기는 인식에서 벗어나, 가까운 친지와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받는 소규모 예식 문화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지영 기자
surge@kukinews.com
서지영 기자